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3번 시편121편

(인도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회중)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회중)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인도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회중)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회중) 여호와게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가지 지키시리로다(1-8)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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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말씀 _ 누가복음 10장 25~37절, 이와같이 행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의 반전, 사마리아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스토리로 중세부터 지금까지 화가들도, 작가들도 모두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본문 말씀을 21절에서부터 연결하여 살펴보면 이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신 것을 감사합니다.”(10:21).

지금 우리가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길 수 있는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에게 숨겨질까요?

1.“율법을 통한 영생?”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시험하려 말하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정말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계는 지금 종말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시대에, 믿을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환경의 변화에 많은 이들이, 동물과 식물, 생태계가 미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팬데믹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과연 세계적인 2차 팬데믹은 어떻게 극복될까요? 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눈 앞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도 율법교사와 같이 물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십니다.

1)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

2) 너는 어떻게 읽느냐?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헬라에 성경의 의미를 담아 “너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어떻게 해석해주는가?”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율법교사는 하루에 두 번씩 반복하는 신명기 6:5의 쉐마의 말씀으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히브리어 본문에 “마음”이나 “이해”를 추가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에 관한 레위기 19:18의 명령을 포함시켰습니다. (“위대한 계명” 마가복음 12:28-34와 마태복음 22:34-40에서는 한 율법사가 질문을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율법교사는 올바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계속)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2.“내 이웃이 누구인가?”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교사는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누가 이웃입니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Danker는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이웃을 제 몸처럼 기꺼이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다만 저를 잘못된 이웃과 엮지 마십시오.”

Jeremias도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율법교사와 예수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고 제시합니다.

율법교사: 저의 책임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대답: “고통 받는 사람을 생각하라, 네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누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라. 그 때 너는 사랑의 요구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율법교사의 질문은 대단해 보입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보이지요. 그런데 그는 오직 그 자신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겐 율법도 이웃도 그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일 뿐입니다. 율법을 통해 성공하려는 이들이 지금도 세상에 가득합니다.

"내가 종교적으로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런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다음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3.누가 가까이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웃”(neighbor)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영어에서 뿐만 아니라) 헬라어에서 이웃이란 단어는 “가까이 있다”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들 즉, “주변”(neighborhood)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반쯤 죽게 된 채로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를 본 사람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을 헬라어 단어로 살펴보면 처음 두 반응에 대해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antiparerchomai(31,32절)로서, 문자적으로 세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erchomai = 가다

par(a) = 옆으로

anti = 반대편으로(건너편으로)

이와 달리, 세 번째 사용된 동사는 proserchomai(34절)로서 문자적으로 두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erchomai = 가다

pros = 에게로

그럼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누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인가?”

율법교사는 “누가 내 이웃인가?”라고 물었다면 예수님은 “누가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인가?”라고 묻고 계십니다. (파르, 안티, 프로스 세 단어 중 사마리아인에게 사용된 단어가 프로스, '~에게로' 입니다. 그는 강도 만난 이에게로 갔습니다.)

율법교사에겐 누가 나의 이웃인가?가 관심사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이웃인가?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은 묻고 계십니다.

세 번째 사람(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누가 보아도 그가 ‘이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세 번째 사람을 내 이웃으로 두고 싶어하지 내가 ‘이웃’이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4.“이와 같이 하라”

아마 이 본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우리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는 본문의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는 수렁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splagchnizomai). 그는 또한 수렁에 있는 그 사람을 “돌보아주었습니다.”(epimelo, 34절). 그는 또한 주막주인에게 “돌봐 달라”(epimelo, 35절)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비유에 대한 이 해석적인 접근법에서 지나치지 않아야 할 가장 평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인가?”입니다.

“왜 사마리아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은 사람들이 베푸는 긍휼에 관해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가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가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가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겐 비그리스도인으로부터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에 관해 배우게 됩니다.

결국,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계속 행동하라”

Scott (Jesus, Symbol-Maker for the Kingdom)는 오늘 본문말씀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수렁으로 들어가야 하며, 철천지 원수의 섬김을 받아 봐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p.29).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사람들에게 온다. 비유의 세상에 들어가는 것, 즉 수렁에 빠지는 것은 은혜가 유일한 대안이 되도록 매우 낮아지는 것이다. 요점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단순하다: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p. 31).

“누가 내 이웃인가?” 질문한 율법학자는 자신이 “이웃”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결코 자신이 “강도 만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를 구원할 이가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는 끝내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하며 선한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이 율법학자를 향해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하고 물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옳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행하여” 영생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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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