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7번 시편130편
(인도자)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회중)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인도자)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회중) 주여 누가 서리이까
(인도자)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회중)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인도자)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회중)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인도자)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회중)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인도지)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회중)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다같이)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1-8)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27장 주님 주실 화평
말씀 _ 누가복음 13장 10~17절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풀려났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10절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라고 시작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다음과 같이 여섯 번의 안식일 사건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4:16-30 예수께서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다
∙ 4:31-37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들린 남자를 고치시다
∙ 6:1-5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
∙ 6:6-11 예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
∙ 13:10-17 예수께서 꼬부라진 여인을 고치시다
∙ 14:1-6 예수께서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지막 안식일 치유(14;1-6)와 유사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에서 모두 예수님은 사람이 소나 나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사건과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주일 본문 말씀 “이 땅에 불을 던지고 분쟁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된 회당 안에서도 반대하던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무리는 기뻐합니다.(17절).
또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 아는 선행을 행하시지만 어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의 배경이 안식일이라는 의미를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안식일에?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여자가 18년 동안 이 병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을 두 번 듣게 됩니다. 11절과 16절이지요. 그런데 “안식일”이란 단어는 5회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제7일)인 토요일, 곧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으로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의 시간입니다.(레 23:3; 마 12:9-10). ‘안식일’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솨바트’는 ‘일을 중지하다’, ‘행동을 멈추다’, ‘휴식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쉬는 날’을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창조 사역을 멈추고 쉬심으로써 창조 사역을 완성하셨으며, 또 그날을 거룩히 구별하고 복주셨으니(창 2:1-3), 안식일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피조물인 인간도 모든 일들을 멈추고 그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날입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전 창조 때부터 지시된 안식일 준수 명령은 출애굽을 통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으며(출 16:22-30; 20:8-11), 특히 신명기 5장 15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이 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그래서 왜 안식일에? 라는 물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한 신학자는 누가복음 13장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예수)의 안식일 위반은 적절하지 못하고 불필요해 보인다. 그는 늦출 경우 할 수 없는 착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응급구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화재가 난 집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경우는, 예수께서 치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하는 경우, 즉 해가 질 때까지 그냥 두면 죽게 될 구덩이에 빠진 양과 같지 않다. 바리새인들을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양을 구덩이에서 끄집어 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을 위해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신학적인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안식일은 창조질서의 주요한 상징(the chief sacrament)이기 때문에, 그 질서의 어떤 중대한 개별적인 사례가 긴급하고 돌이킬 수 없는 무질서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만 정당하게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를 그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의 경우가 아니다. 그 남자는 수년 동안 마른 손을 갖고 있었다[또는 여자는 18년 동안 앓았다]. 왜 예수는 하나님의 선한 이름으로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토라 율법과 충돌하지 않게 그 사람을 치유하지 않았을까? 왜 예수는 해질 때까지 그와 함께 앉아 있으면서 그 시간을 그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에 고정시키는 데 사용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은 함께 성경을 찾아보면서,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치유를 바라보게 하는 무대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불필요하게 물을 흐리는 요점이 무엇인가? ….
그러나 포도주를 만드는 성서적 표현의 요점을 조금 더 추상적으로 보고자 노력하라.새로운 통찰은 늘 사물을 바라보는 옛 방식과 충돌한다.
우리를 견고하게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스템 이론(systems theory)입니다. 시스템 이론은 어떤 사람이 항상성(homeostasis), 즉 사람들이 늘 하던 편안한 방식이 깨어질 때마다 누군가는 그 계획을 방해하고, 그 계획을 수립하는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말합니다. 항상성에서 벗어나게 되면, 근심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스템 이론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혼돈을 던져 주십니다.
“안식일일지라도 그 묶인 것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당장 해야하는 일을 예수님은 그녀의 관점에서 바라보셨습니다.
여자, 질병, 그리고 상징들로서의 치유
신학자들은 이야기의 여러 특징들은 여자의 상황이 여자로서의 그녀의 작아진 지위를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말하곤 합니다.
그녀의 상황은 “약함의 영”에 기인한 것이고, 이 약함은 그녀를 허리가 구부러진 상태에서 똑바로 설 수 없게 했지요. 예수님은 “여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그녀를 부르고 계시다는 부분에서 일반적인 여성들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여자는 “아브라함의 딸”을 자각하게 되며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병”은 문자적으로 “약함의 영”(11절)과 “약함”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네 병/약함에서 놓였다”(apoluo)고 선언하고 있습니다.(12절). 그런데 이 단어는 늘 치유와 관련이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해방하다” 또는 “멀리 보내다”는 뜻으로, 소나 나귀를 “풀다”(15절)와 (여자를) 매임에서 “풀다”(16절)는 단어(luo)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회복하다” 또는 “다시 바로 잡다”는 뜻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비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그녀를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속박한 것이 사탄이라는 견해가 중요해집니다. 예수님은 11절에서 질병의 영에 사로잡힌 여자를 16절에서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18년 동안이나 묶어 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지배에 도전하고 있으나 경건하게 안식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현대사회의 먹이 사슬은 누가복음 13장의 여자가 우리 모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2장에서 시므온을 통해 분별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보게 될 “계시의 빛”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이 빛(illumination)은 신자들에게 “영광”이지만 또한 반대를 부추기기도 할 것입니다.(2:32,34).
누가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반대에 직면할지라도”라는 부분을 이해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걸어간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 바울을 따라, 그가 걸어온 길에서 그는 분명, 우리도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선택이 빛이요 영광이길 전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우리들의 약함의 영, 약함에서 놓이게 할 것입니다.
누가의 신학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자(1:54-55,69-75,77-79)이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교사이고, 그의 말씀과 행동들은 예언적이고 해방적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2000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여자야, 네가 네 병에서 풀려났다”하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고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오늘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