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35장 큰 영화로신 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6번 시편104편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회중)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인도자)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회중)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인도자)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회중)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1-5)
(인도자)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회중)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회중)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인도자)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회중)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인도자)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회중)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9-13)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말씀 _ 누가복음 14장 1절, 7~14절 잔치를 베풀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 여정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을 향해 끊임없이 당신의 말씀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 주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제자도입니다. 다른 말로는 제자의 길이지요.

인생을 흔히 길에 비유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오랜 전통이지요. ‘길’ 넓은 길과 좁은 길,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 아는 길과 알지 못한 길... 인생을 길과 비유한 수많은 이야기는 ‘진리’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그 길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제자의 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는 이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제자이기 때문이겠지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최선을 다하라.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3:24)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13:28)가 모여 있는 그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애쓰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어지는 말씀이라는 것이 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key)가 될 것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빵을 드시러 어느 바리새인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힌트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보다 그날의 상황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아마도 그의 집은 부유하였고 마음 좋은 그는, 많은 이들을 그의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을 하고자 했겠지요. 그 자리에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초대받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의 상상과 같기도 다르기도 한 모습이 예수님의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로가 좋은 자리에, 윗자리에 앉으려고 눈치를 보며 또 빠르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윗자리를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윗자리에 앉지마라. 너보다 더 존귀한 사람이 오게 된다면 그 주인이 너에게 와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할지도 모른단다.”

“그러니 끝자리에 앉아라. 그때는 너를 초대한 주인이 와서 더 높은 자리를 권할지도 모른단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기는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무슨 뜻인가?

“높은 산” 또는 하늘처럼 땅 “위에 높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이 단어군은 또한 “높은 지위나 계급”을 뜻하는 “매우 귀중하거나, 중요한”이란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교만하거나 거만한”이란 부정적인 뜻도 내포하기도 합니다.

동사로 살펴보면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높은 곳”에 두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다, 그들에게 높은 지위를 주다, 그들을 중요하게 만들다. 그들을 “높이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은총을)을 받은 사람들로서 우리는 우리들의 선물들을 자랑해서 안 되는걸까요? 그것은 자기를 높이는 것인가요?

 

현대영어성경(Contemporary English Version)에서는 이 구절을 “만일 당신이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위에 둔다면”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For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이 동사의 명사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행동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닙니다. 겸손한 자에게 일어나게 될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신다고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설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높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즉, 자신에게서 오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것인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됩니다.

또 하나의 다른 문제는 언제 높아지는 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높아지는 것이 현재 추구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받게 되는 선물인가?입니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낮춘다의 동사형 의미는 “겸손하게 하다”이지만 높아지는 것이 신처럼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면, 그 때 자신을 낮추는 것은 우리 인간의 현실(실재)로 돌아가는 것, 인간이 되는 것, “땅에 내려오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2개의 해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높아지기 위하여 낮아지는 척을 하느냐? 낮아지는 자세로 스스로는 높아지는 것을 아예 바라지 않느냐?

그런데 이 절에 접근하는 방법에 관해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낮아지고 높아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On Not Being Nice for the Sake of the Gospel")라는 글입니다.

나는 교회의 주된 죄악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라고 하는 대신에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낮아지는 것/겸손해 지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표현을 대신하여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아지게 될 것이다/낮아지게 될 것이다”는 것의 수동성은 하나님이 행위자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높이고 낮추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집주인이 되는 것에 관한 가르침(12-14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식사에 친구과 형제, 부유한 사람을 초대하지 말아라.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사람들과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라. 그러면 네가 복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네게 갚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4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한 신학자가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초대를 주고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제사장으로 섬기는 것이 명확하게 금지되거나 쿰란 공동체의 입회가 금지되었다” -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인간적 불결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말게 해야 한다.
이런 불결함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회중의 한 가운데서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적합하고, 그의 몸이 (병이나 다른 것으로) 고통 받는 모든 사람, 그의 발이나 손이 마비된 모든 사람, 육신의 결함으로 고통을 받는 저는 사람들, 귀머거리들, 벙어리들, 소경들, 비틀거려서 회중의 한 가운데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없는 노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1QSa 2:3-8, quoted by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 p. 287)]

이 제한들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의 대조가 확연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 자신을 '인간적 불결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구별하고 기록되거나 구전된 율법들을 모두 지키면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엘리트인,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의 식탁에서 앉을 권리를 획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죄인들과 세리들”과 구별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잔치에, 하나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한번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서 누가는 부자에 관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25절입니다.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말씀을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지금, 누가는 청중들에게 부자, 아니 집주인이 진정한 복을 받을 길을 배우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집주인으로 이와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고 배우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스스로를 낮출수 있을까요? 말씀에 따르면 우리에게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우리들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흔히 “겸손”이라는 훈계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적으로 “겸손”(낮아지는 것)은 사전적인 정의와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겸손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성취되는 것임을 늘 알고, 우리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에 평생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경험에 의해 하나님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신뢰에 도달하게 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지요.

 누가복음에서 손님의 겸손(누가복음14장)이나 기도에서의 겸손(누가복음 18장)은, 그들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제공하고, 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누가 주님과 함께 있겠습니까?

잔치를 베풀 때에 누가 주님과 함께 있을지 아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제자의 길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