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73번 이사양 65장
(인도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회중)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인도자)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회중)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인도자)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회중)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인도자)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7-19)
(회중)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인도자)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회중)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5)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_ 누가복음 15장 1~10절,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1-2)
헬라어 원문에서 '수군거리다'로 번역된 단어는 **'디아공귀조마이'(διαγογγύζω)**입니다.
이 단어는 불평하고, 속삭이고, 비난하는 행위를 넘어, "속으로 분노하며 투덜거리는" 깊은 적대감을 내포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에는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단순한 멸시가 아니라, 예수님과 어울리는 그들을 보며 터져 나오는 분노와 혐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 잃은 양의 비유(4~7절)
그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여기서 '잃었다'고 번역된 **'아폴뤼미'(ἀπόλλυμι)**는 "망하게 하다, 파괴하다, 멸망시키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양이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하고, 파괴하고, 파괴하며, 멸망시키고, 멸망하고 있는 이들을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잃어버린 양들을 찾는 주인(잃어버린 사람)의 태도입니다.
"ἕως εὕρῃ αὐτό"(헤오스 휴레 아우토) '찾아낼 때까지'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찾는다는 의미가 되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열심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하나님의 열심인가요?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는 열심입니다.
웨슬리의 구원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멸망을 향해 가는 '잃은 양'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멸망의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해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을 베푸십니다.
마치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찾기 전부터,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찾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향해 있지 않다면? 은혜가 우리 마음에 양심의 빛을 밝히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찾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 답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잃어버린 양”입니다.
우리의 마음, 심령, 생각이 파괴되고, 파괴하며, 서로를 망하게 하고 멸망하고 있는 잃어버린 양, 저를 찾아 뒤쫓아 다니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5절의 "즐거워하여"는 헬라어 "χαίρων"(카이론)으로, 넘치는 기쁨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만족이 아닌 완전한 기쁨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열심’과 ‘기쁨’이 동시에 가능할까요?
예를 들면 열심히 공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기쁘시겠습니까?
댄서의 열심, 운동선수의 열심, 작가의 열심, 싱어의 열심, 연주자의 열심이 ‘기쁨’이 될 때 우리는 그들을 통해 감동을 받게 되지요.
하나님의 열심은 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 찾게 되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은 이 ‘기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열심히 하나님을 담기 원합니다.
2.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이어서 예수님은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눅 15:8)
고대 팔레스타인의 집은 창문이 거의 없어 어둡고, 드라크마와 같은 작은 동전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잃었다'는 말은 양의 비유와 같은 단어인 **'아폴뤼미'(ἀπόλλυμι)**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드라크마가 단순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잃고 쓸모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웨슬리의 구원론적 관점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집 안에 있었지만,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죄로 인해 그분의 형상을 잃고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 즉 교회 안에 있지만 잃어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이들을 찾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등불을 켜야합니다.”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하십니까?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ἅπτει λύχνον καὶ σαροῖ τὴν οἰκίαν"(합테이 뤼크논 카이 사로이 텐 오이키안)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시고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으실 것입니다.
여인이 등불을 켜고 온 집을 쓸어 드라크마를 찾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시고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3. 회개와 기쁨(7, 10절)
잃어버리는 양의 비유와 드라크마의 비유는 7절과 10절에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가?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것을 찾아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의 질문이요. 그 결론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7절, 10절의 “회개(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는 단순한 후회가 아닌 생각과 삶의 방향 전환을 뜻합니다. 웨슬리는 이를 *하나님의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 불러일으킨 응답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때, 우리를 향한 칭의(justification)의 은혜가 이루어지고 이를 웨슬리는 *순간적 새 탄생(new birth)*이라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μετανοήσαντος"(메타노에산토스)는 '마음을 바꾸다', '돌이키다'를 의미합니다.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이는 **중생(New Birth)**의 경험으로, 성령의 역사로 인한 근본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변화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를 기대하십시오. ‘변화’할 때까지 열심이신 하나님, 부지런한 하나님을 의지해 보십시오.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리는 대상이었던 우리가, 변화될 때 하니님의 열심과 부지런함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수군거림의 대상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한 ‘양’과 ‘드라크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양’의 귀함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귀한 은전이었습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6절과, 9절에서 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는 10절에서 "하나님의 사자들 앞"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 기도합니다. “변화되게 하소서!”
찬양 _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