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7번 사순절(4)

(인도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인도자)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회중)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인도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 33:12-16)
(회중)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인도자)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요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회중)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0-22)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등록하기

찬양 _ 151장 만왕의 왕 주께서

말씀 _ 누가복음 15장 1~3, 11~32절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 것은 내가 잃어버렸다가 되찾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에게 “돌아온 탕자”로 잘 알려진 오늘의 본문 말씀은 14장과 연결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오늘의 말씀 또한 9장 51절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라워지실 날이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하셨다.”(눅9:5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는 여행 중 가르치신 말씀은 19장 27절에서 끝을 맺게 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먹다. (15:1~3)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이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모여왔다.” (15: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모두 함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2절 말씀에서 실마리(hint)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죄인들을 맞이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

‘식사의 자리’입니다. 이 ‘식사의 자리’가 바로 14장이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에 빵을 드시러 어느 바리새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곳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 어떤 병자가 예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그들은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를 돌려보내셨지요.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베푸실 때에 그 집의 한편에서는 좋은 자리를 골라 앉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인가요?

1. 바리새인?

2. 병자?

3. 좋은 자리를 고르는 자?

이 ‘식사 자리’와 15장 2절의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는 말씀을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14장 25절 말씀을 통해 어찌하여 죄인들과 세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14:25)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26)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그것은 땅에서도. 거름에도 아무 쓸모가 없어 밖에 내던져 버린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14:34-35)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 세리와 죄인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예수님 가까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동행하는 이들은 말씀을 들으며 ‘식사의 자리’에 함께합니다.

세가지 비유 : 잃어버렸다가 찾은 것 (15:4~32)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수근거립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세가지 비유입니다.

  1. 잃은 양의 비유
  2.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드라크마는 헬라화폐의 단위로 로마의 화폐단위 데니리온과 동일한 가치가 있으며,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에 해당됩니다.)
  3. 잃었던 아들의 비유

잃었던 아들의 비유는 램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요.

 누가는 세 비유를 하나의 세트로 기록하고 있는데 세 비유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린다. •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는다. • 잔치를 한다.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 돌아온 탕자 (15:11~32)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여 ‘야경’과 같은 수많은 걸작을 그렸고 당대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당대의 부와 명성입니다. 호화로운 저택을 샀고 더없이 화려한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알수 없는 이유들로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더 이상 렘브란트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더욱 아름답고 깊어집니다. 렘브란트는 더 이상 작품 주문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소장용으로 미술품들을 계속 사들이다가 1656년에 공식적으로 파산을 하게 됩니다. 그의 저택과 재산은 경매로 모두 처분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그린 그림이 “돌아온 탕자”입니다.

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1661~1669년, 262 × 205cm, 에르미타주 박물관

“돌아온 탕자”는 몹시도 렘브란트와 닮아 있습니다. 모두 잃은 그가 돌아 갈 곳은 어디일까요? 모든 것을 잃은 그가 유일하고 변하지 않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기억한다면 말씀의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맏아들은 밭에 있었다.

맏아들은 장남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질녘에 혼자서 조용하게 밭에서 돌아올 때에 그는 음악소리와 춤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당황하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그는 하인들에게 상황을 묻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맏아들이라면,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동생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피곤하고 지친 몸은 음악소리에 예민해지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화가난다.

동생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둘째 아들이 돌아와 기쁨에 충만한 아버지는 미처 맏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종에게서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듣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맏아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종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위하여 종노릇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라도 주셔서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15:29)

맏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맏아들의 모습에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명령을 단 한번도 어긴 적 없다는 맏아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았다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그런데 정말 아버지의 말씀대로, 아버지의 명령대로 그렇게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회개와 기쁨

잃어버린 것들의 비유는 결론적으로 돌아오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세가지 비유는

“아버지의 사랑”과 동시에 “돌아오는 회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이다.” (15:7)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15:10)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은 네 동생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어버렸다가 되찾았기 때문이다.” (15:32)

맏아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맏아들에게도 바리새인들에게 동일하게 전하는 말씀이지요. 사랑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 누구도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온 마음을 다하고 네 온 목숨을 다하고 네 온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다. 돌째 계명도 그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라는 것이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들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들이 돌이키고 회개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시선에서 돌이키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기 원하시며 잃어버렸던 것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Richard Jensen (Preaching Luke's Gospel)은 회개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회개로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가 되찾음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되찾으셨다는 현실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직접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단지 그에게, 은총의 행위로 아들의 지위를 다시 제공한다. 아들은 받아들인다. 아들은 회개한다. 즉 아들은 되찾음을 받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p. 175]

우리가 회개(metanoeo)의 의미를 “우리의 마음을 바꾸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때 Jensen이 제안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는 “잃어버린” 사람의 행동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찾는 자(Finder, 즉 하나님 또는 아버지)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회개의 이미지는, 잃어버린 것이 처음부터 본래 소유자(즉, 아버지)에게 속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설명되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회개는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관계의 창조라기보다는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32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은 네 동생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어버렸다가 되찾았기 때문이다.”

비유들의 결론에서, 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늘의 모든 사람들(6절에서는 “하늘에서는”,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기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되찾고 회개하는 죄인들로 인해 우리가 하늘의 천군천사와 함께 기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는 이 생각을 확대해서, 이 비유들은 “회개”의 또다른 차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이나 동전 둘 다 회개할 수 없다. 비유의 목적은 “죄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데 있지 않고, “의인”에게 잔치에 함께 참여하라고 요구하는데 있다. 우리가 잔치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관계가 공로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긍휼에 근거한 것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언짢아하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회개할 때 천사들과 함께 축하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한다. [p. 298]

아마도 회개할 필요가 가장 많이 있는 사람들은 판단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고, 맏아들이고, “찾는 자들”의 기쁨의 잔치에 함께 하기를 원치 않는 다른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뻐할 때의 중심인물은 찾음을 당한 아들이 아니라, 찾는 사람, 즉 아버지라는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렸던 영혼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의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할 때 비로서 진정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맏아들은 자신을 ‘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맏아들 또한 잃어버린 아들입니다. 그가 스스로 ‘아들’임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이 어느덧 절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회개’의 이 절기가 진정한 ‘기쁨의 잔치’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