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18번 구주강림(4)

(인도자)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회중)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인도자)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회중)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인도자)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62:1-3)
(회중)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인도자)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끊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회중)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다같이)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64:1-4)

송영 _ 찬송가 1장 만 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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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12장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누가복음 1장 46~55절 마리아의 노래

누가복음 1장은 굉장히 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가랴와 마리아, 즉 두 사람의 대조적 모습입니다. 사가랴도 마리아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방문한 것입니다.

산타크로스가 정말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늘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가져다 주기를 꿈꾸긴 하지만 막상, 산타크로스가 내 눈 앞에 그리고 놀라운 선물을 안겨준다면, 분명? 진짜 산타크로스가 맞나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믿음의 대조

누가복음 1장에서 전하는 광범위한 문맥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를 믿지 못했던 것인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인지? 그는 믿지 못했고, 그는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는 알기를 원했습니다. 왜? 이유는? 그런데 알고자 하는 것이 믿음을 향한 길이 되어주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듣고 읽고 보아야 알게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여진 책이기 때문입니다.(디모데후서3:16) 누가는 우리는 지금, 아는 것과 천사를 아는 것, 말씀을 아는 것, 그의 뜻을 아는 것이 왜 믿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가?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사가랴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믿지 않았습니다.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누가복음1:20).

반면에 마리아는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여인, 마리아는 46절부터 55절 마리아의 노래에서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천하다’는 말은 신분이나 지위가 낮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그런데 비천한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기에 내가 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

그녀의 믿음은 완전합니다. 그녀의 완전한 믿음은 제사장 사가랴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로마의 정치가)에게 예수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자 누가복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번 말씀에서 전했습니다.(누가복음 1:3)

누가는 지금 데오빌로 각하, 그리고 우리에게 이것은 ‘아는’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사가랴와 마리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믿음, 극단적이고, 편협한 믿음, 교회를 향한 비난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신앙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이비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사이비 似而非,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 pseudo)

그러나 우리의 종교가 우리에게 ‘믿음’을 묻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요즘, 제게도 참 아픈 질문입니다. “믿음”을 묻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리아의 온전한 믿음이 제 안에서 고백되어지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 삶의 완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래서 걸어가는 그 길이 은혜가 아니면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가 말하는 믿음은 사가랴의 반전을 품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 그의 아들 요한이 태어나자 사가랴는 찬송을 부릅니다.(누가복음1:64) 사가랴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의 시간표가 마리아의 시간표보다 조금 늦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옵소서!

대림절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인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1장 46~55절까지를 마리아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신학자 젠슨(Jensen)은 “누가복음 전체는 이 노래에 대한 주석이라고 까지 말 할 수 있다”고도 하였지요.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누구를 위하여 오셨는지, 하나님의 관심에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6절)

마리아는 지금, 천사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사를 만나고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요?

마리아는 천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누가복음1:28~33)

그리고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러자 천사가 떠나가고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 즉 사가랴의 집으로 뛰어갑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리아의 고백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이 오늘의 본문, 마리아의 노래(찬가)라고 부르는 본문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어찌보면 당연한 순서인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여종에게 일어난 일이니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주를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리아의 고백은 그런 의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딸, 하나님의 백성, 그러니 내게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일이지요. 이런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찬양합니다.”

마리아(Maria)의 뜻은 “사랑받는”이지요. 히브리어로 “미리암(Miriam)”이 “마리아”이고요.

2000년 전, 3000년 전, 수 없이 많은 마리아들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이름으로, 소녀에서 여인으로, 어머니가 된 많은 마리아들을 떠올려 봅니다. 굳이 연약하다는 말은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마리아들의 삶이 어떠하였을지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48절).

그런데 마리아 다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49~50절)

마리아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1~53절)

오직, 능하고 거룩한 하나님이 그의 팔로 강한 힘으로 보이사 긍휼을 베푸심으로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그의 사랑으로 비천한 여인을 돌보셨으며 능하신 이가 내게 큰일을 행하셨으니 이제는 만세에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절이 마리아의 노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우리들의 대림절은 이 세상 삶의 모든 불의와 압제와 부당함들이 사라지는 다가올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정의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함께할 것을 믿는 계절이 대림절의 기간입니다. 눈이 오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만큼 평화를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54-55절).

마리아는 그녀의 찬가에서 계속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과거시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행하셨다”(49절). “보이셨다”(51절). “내리치셨다”(52절). “배불리셨다”(53절). “도우셨다”(54절).

이렇게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며 영원히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녀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아이(1:32)의 어머니가 아직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반드시, 영원히 이루어질 약속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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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