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18번 구주강림(4)

(인도자)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회중)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인도자)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회중)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인도자)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62:1-3)
(회중)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인도자)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끊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회중)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다같이)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64:1-4)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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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08장 그 어린 주 예수

말씀 _ 누가복음 1장 46~55절, 대대로, 영원히, 우리의 뿌리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1976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46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알렉스 헤일리의 경이로운 책이 있습니다. 뿌리(Roots)입니다. 쿤타 킨테라는 17세 감비아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한 미국 가족의 이야기는 1억 3천만 명이 시청했다고 하지요.

《뿌리》는 소속감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가족들이 그들의 자리를 찾고, 과거와 결부시켜, 그들의 뿌리 찾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만들었고 그들의 뿌리 찾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텍사스의 퍼킨스 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Abraham Smith는 누가복음의 처음 장들이 우리 모두의 공동 뿌리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서 예수의 예언자적 운동의 뿌리를 추적하는 시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1장 39-45절(46-55절)은 우리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의 등장을 기대하며 축하할 때 우리에게 소속감, 정체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뿌리를 찾고 싶으신가요?

오늘 말씀을 통해 뿌리를 깊이 생각해 보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아직 어머니가 아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이 장면의 놀라움은 바로 1분 전엔 어머니가 아니었으나 이 찬양을 부르는 순간 주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이 놀라움을 어떻게 전하고 또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Jensen은 오늘의 본문말씀을 광범위한 문맥에서 ‘믿음의 대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들었으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증거를 원한다. 그는 알기를 원한다. 불신앙은 항상 알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는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천사는 믿음을 요구하고, 믿음이 부족한 사가랴에게 벌을 내린다: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20절). 그래서 사가랴가 말을 못하게 되었다. 사가랴는 불신앙의 모델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믿음의 모델로 서 있다! 사가랴와 마리아 사이의 대조는 엄청나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반열에 속하는 제사장이다. 그럼에도 그는 믿지 않는다. 마리아는 평범한 농부 여자이다. 그러나 그녀는 믿는다! 그녀는 완벽하지만, 사가랴는 아니다. [p. 24]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다(1:38).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신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믿음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해이다. [p. 25]

믿음의 대조라고 보면 마리아와 사가랴 중 당연히 마리아처럼 살아야한다는 정답이 딱 떠오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사가랴처럼 되지 말고, 마리아처럼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사가랴’와 같았던 때를 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을 때보다는 사가랴와 같을 때가 분명히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가랴와 같을 때가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나 분명한 환경 때문입니다. 사가랴의 불신의 이유는 너무도 합리적입니다. 사가랴는 늙었고 엘리사벳도 늙었습니다. 아들이라니요?

그런데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들으며 그 순간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웠으며 주님의 모든 계명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습니다.(1:6) 그런데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가랴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가랴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의롭지 않은 사람이라서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었다면 천사를 믿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가랴의 ‘믿음’을 넘어선 ‘뜻하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태어난 아이, 그 아이가 장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그들에게 오래된 약속이 있었고 세례 요한은 그의 길을 걸어가며 그 깊은 ‘뿌리’를 발견하였고 그 ‘뿌리’가 세례 요한을 지키며 나아가게 하여 마침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사가랴의 회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돌아보셨던 날에 내가 사람들 가운데 겪어야 했던 부끄러움을 없애 주시려고 이와 같이 행하셨다.”(1:25)
“사가랴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해서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쓰자 모두 놀랐다.”(1:63)

사가랴의 노래는 누가복음 1장 67~79절까지 이어집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세례 요한의 순교 이야기에서 엘리사벳과 사가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 일을 통과함으로 요한이 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이 내 구주 하나님을 줄거워하는 것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지금부터 모든 세대는 나를 복되다고 할 것이니 이는 전능하신 분이 나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시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미칩니다. 그는 그의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그의 마음속으로 교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들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시어 자기의 종 이스러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것입니다.”

여려분, 마리아의 찬양에서 뿌리를 찾으셨습니까?

대림절에 우리가 상기해야 뿌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불변성입니다.

“대대로”(1:50)와 “영원히”(1:55)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대로 이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것입니다.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미칩니다.”

‘뿌리’를 생각했을 때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있음’과 ‘없음’, 이 뿌리를 ‘조상’,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깊이 들여다 보면 뿌리는 ‘말씀’과 ‘경외’에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 그 분 한분이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전능하신 분이 나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시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미칩니다.”

사가랴의 믿음을 넘어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그것을 오래 동안, 영원히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오늘의 세상은 변화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불변성이 몹시 요청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요동치는 변화가 불안감을 조성하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안을 야기하는 변화 속에서 대림절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음을, 우리의 뿌리를 다시 찾는 절기입니다.

임마누엘, 그가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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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