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36번 시편90편

(인도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회중)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인도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회중)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인도자)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회중)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인도자)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회중)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인도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회중)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도자) 누가 주의 능력을 아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회중)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12)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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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말씀 _ 누가복음 12장 49~5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은 꽤 많은 내용이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59절에 이르는 말씀에는 바리새인들의 위선, 마땅히 두려워할 분, 그리스도를 시인하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에 이어 오늘 본문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

49절의 이 말씀은 우리가 매일 암송하는 그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집 냉장고 문, 엽서, 연하장에서 볼 수 있는 구절들이 아니지요.

물론, 이 말씀이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도 한 요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씀을 듣고자 할 때, 우리에게 듣기 좋은 또는 편안한 말씀만을 듣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서의 말씀은 우리가 듣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도 이렇게 살펴보면 먼저 12장에 계속 흐르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참새를 보라, 바리새인들을 보라, 어리석은 부자들을 보라, 그리고 이 메시지는 10장에서 7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신 후로 계속되고 그들이 돌아올 때 선언하신 말씀이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누가복음 10:23-24).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누가복음 10:25절 이하의 율법학자, 마르다와 마리아(38-42),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더 명확하고 더 풍부하게 보도록 도울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증시가 가장 호황일때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증시가 불황일 때를 예측할 수 있다. 불황은 반드시 증조 후에 온다. 그 증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49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잘 알고 있는 말씀은 “평안을 주노라”(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서로 다른 말씀처럼 들리시나요? 아닙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신의 떠남을 예고하시면서 전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49절)는 풍부한 누가적인 표현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기 위해,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 정결하게 하기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우기 위해,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을 위해 열심 있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동시에 심판이 수반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복음의 상징적 표현(imagery)

세례와 불의 이중적인 이미지는 누가복음에서 3:16에서 이미 등장했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누가복음 3장 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여기서 “불”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49절 말씀은 50절에 이어지면서 ‘세례’라는 단어와 함께 이해되면 “정화”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50절).  여기서 사용된 세례는 신약성서의 다른 곳에서 물세례에 대해 사용된 것과 동일하지만 여기서 이미 일어난 물세례(누가복음3:21-22)를 언급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물에) “뒤집어쓰다/잠기다”는 뜻을 지닌 ‘세례’의 동사형은 여러 가능한 의미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이와 같은 세례가 등장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가복음 10:38).

만약 누가가 동일한 의미를 채택했다면, 이 때 “세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의 얼룩을 말끔하게 없애는,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서의 물의 범람(넘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세례와 죽음과의 연관성(the baptism-death of Christ connection)이 신약성서에서 다음의 구절들에서 명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 로마서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골로새서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지”(표준새번역)/“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개역개정)는 표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는 희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기까지”라는 표현은 우리가 “성취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분명하게 알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성취하다/이루다”는 뜻의 헬라어 텔레오(teleo)는,

전에 기록된 말씀, 즉 주의 율법(2:39),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말씀”(18:31), “성경에 기록된 말씀”(22:37;사도행전13:29)을 “완성하거나” “이루는” 데 사용되고 이 성취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에 이릅니다.

화평과 분쟁/평화와 분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

그 나라의 도달은 평화와 일치의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반면에 그 나라의 선포는 분열의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6-21)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다가올 심판에 직면할 때 우리의 결정과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열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기 위해 오셨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는 강조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평화를 주시고, 그 평화는 사람들 사이의 참된 평화로 인도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평화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예언자들의 말이 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예수의 메시지는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했는지, 사탄에게 속했는지를 결정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이미 그런 분열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11:14-20).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그 속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바르게 결정해야만 합니다. (11:35).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9:23, 14:27).

신학자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 p.267)는 이 구절에 대해 이런 성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심판에 관한 경고는 우리의 헌신(commitments)이 함축하는 바를 점검하게 한다. 마치 그 헌신이 삶의 다른 영역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삶의 한 영역에서 헌신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전에) 예수는 그에게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겪게 될 것이고, 믿음의 헌신은 또한 물질적 소유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그리고 도덕적 책임들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어야만 한다고 경고하셨다. 지금 예수는, 그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헌신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우리가 친구들과 가족구성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헌신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이신 그리스도께 헌신할 수 없다. 우리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은 우리의 가치, 우선순위, 목적, 그리고 행동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옛 생활방식들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들은 중대한 인간관계들에서 위기를 촉발할지도 모른다.”

시대의 징조들

“너희는 땅과 하늘의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지금 시대는 분별할 줄 모르느냐?”

분별하다는 단어는 56절과 57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해석해야만 하고(12:56)고 옳은 것은 판단해야만 한다(12:57)”

다음은 이 절들에 대한 Culpepper’s (Luke, New Interpreters Bible, p.269)의 성찰의 일부입니다.

"때의 징조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보지 못함은 어디에나 있었다. 날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예수는 다가오는 분열과 시대의 특성에 대해 경고하신 후에 무리들에게 한 번 더 판단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는 실제로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57절)고 그들의 성찰을 요구하신다. 누가복음에서 지금은 예루살렘 여행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제자들과 사람들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12:58). 그들은 너무 늦기 전에 지금 그들의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들이 그들을 고발한 사람-이 경우에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요구한 선지자-과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올 때 그들은 더 곤란하게 될 것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부주의한 채무자들은 마지막 한 푼까지도 다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헬라어의 이중 부정법은 예수의 진술을 강조한다. 즉, 너희가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때를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분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한 평화 안에 살아가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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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