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20번 성탄절(2)
(인도자)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회중)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인도자)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회중)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인도자)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회중)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인도자)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회중)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1:68-75)
(인도자)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회중)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8-79)
(인도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회중)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송영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23장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누가복음 2장 41~5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어린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모님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아들을 낳음으로 부모가 된 요셉과 마리아에 관하여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경건한 신앙
팔일째 되는 날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었을 때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2:21)
“율법”에 따라, 그들은 주님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들을 다 마치고 난 후 갈릴리에 있는 자기의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2:22, 23, 24, 27, 39)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다.(2:41)
예수님이 열두살 되던 해에도 그들은 이 절기의 관습에 따라 올라갔다.(2:42)
신학자 쿨페퍼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에 따르면,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4일이나 5일이 걸렸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나사렛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 가정은 절기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걷는 길,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복된 삶인 것 같습니다. 자녀와 함께하는 여행길이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라면 더없이 복된 길이겠지요. 굳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가는 길이, 주님을 향한 길,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이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것을 습관으로 삼다
오늘 본문 말씀 42절에는 주목해야하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관습”입니다. 헬라에 ethos(관습)은 “전통에 의해서 대부분 정해지고, 전반적으로 사회의 인정을 받는 행동방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 단어 “윤리”(ethics)가 생긴 것입니다.
또 관습은 주로 “습관”이나 “관례”로 번역됩니다. 신약성서에서 12회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 10회가 누가/사도행전에 등장합니다. 누가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위해 율법에 따른 관례(습관)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경에 청년 예수님에 관해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예수님께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은 부모에게서 성장했음을 깨닫을 수 있도록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년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2:51)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2:52)
어린 예수님에서 청년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관습”에 따란 행한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순종”을 배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관습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까요?
부모된 우리들은 어떤 “관습”, “습관”, “윤리”를 물려주고 있을까요?
매주 주일 교회 참석을 습관으로 만들고 있나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 교회에 가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고 있나요?
생일날이면 감사헌금을 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고 있나요?
그런데 “습관”에 관하여 또다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
습관은 생각없이, 그저 반복적인 종교행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반복적이고 종교활동을 습관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관습에 따라 습관이 되어 우리가 “순종”하여 우리들의 자기 정체성이 정립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실천(Praxis)이 습관의 참된 의미입니다. 관습, 습관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습니까? 율법,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식의 반복이 습관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습관입니다.
예수께서 자라나셨다.
열 두 살의 예수님은 그의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당시 유월절 절기는 유월절이후 무교절까지 8일 동안 열리는 긴 축제였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았으나 그 부모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2:43)
유월절 절기를 다 지내고 서둘러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리를 지어가며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얼마쯤 길을 가다보니 당연히 무리에 있을거라 여겼던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 보았지만 예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예수님을 찾습니다. 세상에나 그 길이 3일이나 지나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소년 예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매우 놀랐으며 그의 어머니는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 보라, 제 아버지와 내가 너를 걱정하면서 찾았다.”(2:48)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예수님은 누구의 아들인가요?
분명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을 넘어서는 확장된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49절 말씀은 헬라어 표현으로는 “∼이 필요하다/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입니다. 아마도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삶의 숙제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요셉과 마리아같이 부모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하는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부모된 우리가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 뿐만 아니라 어른된 우리가 청년들과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로 새로운 종교의 시대를 연 마틴 루터의 부모님은 루터가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 루터가 되었지요.
누가복음 4장에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3절과 9절에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에 나오는 표현이지요. 물론,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에 대한 대답을 4장 18~19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포로된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눈 먼 사람들에게는 눈 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면?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주기도문 (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