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0번 성탄절(2)

(인도자)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회중)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인도자)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회중)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인도자)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회중)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인도자)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회중)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1:68-75)
(인도자)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회중)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8-79)
(인도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회중)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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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11장 귀중한 보배합을

말씀 _ 누가복음 2장 41~52절 '에토스'와 해야만 하는 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일하게 정경에 기록된 소년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소년 예수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독실하게 유대의 율법을 지켰다”

예수는 출생 후 8일 째에 할례를 받았다(2:21)
성전에서의 마리아의 정결예식과 예수의 할례 기사에서, 그의 부모들이 “율법”에 따라서 행했다는 말을 다섯 번 듣는다(2:22, 23, 24, 27, 39)

본문은 예수의 부모가 유월절 축제를 준수하기 위해 매년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말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늘 하던 대로”(헬라어로, ethos)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에 따르면, “하루에 15마일의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에 그들의 예루살렘 여행은 4일이나 5일을 걸었을 것입니다.

쉽지않은 여정이었겠지요? 어리면 어리서 어려웠을테고 12살 소년이라면 5일이나 걸어가야하는 그 여행을 가보싶어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사춘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12번째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입니다.

그런데 ‘늘 하던대로’라는 헬라어 에토스(ethos)는 단어를 다시 들어보시면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시는지요?

영어 단어 “윤리”(ethics)는 이 단어 ‘에토스’에서 생긴 것입니다.

에토스의 측면에서 ‘윤리’는 “전통에 의해서 어느 정도 확정되고, 전반적으로 사회의 승인을 받은 행동방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Lowe &Nida의 사전]. 그리고 이 단어는 “습관”이나 “관례”로 자주 번역됩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12회 사용되며, 그 중 10회가 누가복음/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2장 27절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에 따른 관례(습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청년 예수에 관해 기록이 아무 것도 없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은 부모에게서 성장했음을 오늘의 본문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습관은 소년 예수에서 청년 예수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서도 등장하는 이 단어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또하나 이 단어의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헬라어 단어 ethos는 성서에서  “거짓말하지 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 비도덕적이 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을 상하게 하거나 죽이지 말라, 관대하라”와 같이 우리가 보통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행동이라 간주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ethos가 사용될 때, 그것은 거의 늘 종교적인 행동들을 가리키며, 오늘날로 말하면 늘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히브리서10:25)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모세의 “풍습”을 따르는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는 그 풍습들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풍습들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매번 시도하며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같은 전통에 순종합니다. 그와 같이 에토스가 바로 ‘성탄절’이요 ‘사순절’ ‘오순절’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의 에토스를 ‘교회’와 함께 지켜나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것은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맨 처음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에 관한여 Craddock (Luke)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이 유아 시절 하나님께 봉헌되었을 때의 진정한 의미, 즉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스스로 주장하신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특별한 본질이나 사명은 천사, 마리아, 엘리사벳, 사가랴, 목자들, 시므온, 안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거나 그들을 통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예수는 그것을 직접 주장하신다(49절). 교회는 견신례 의식을 통해 청년들의 삶에서 이런 순간을 인정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p. 42].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번역은 “내 아버지의 일에 관여해야 한다” 만큼 휼륭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첫 번째 번역은 예수의 활동보다는 장소를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요한복음 2장 16절과 달리, 누가의 예수는 결코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성전이 누가의 설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활동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것은 우리로 두 번째 번역으로 나아가게 한다. “일들”은 유대의 선생들과 토론할 때 예수께서 관계하셨던 일종의 활동을 뜻하는 것이 확실하다. 예수의 “대답”에 초점을 둔 군중들의 놀람으로 인해, 예수는 실제로 선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것은 정확하게 누가가 예수의 사역의 절정에서 강조하는 예수의 활동이다. 20장 1-45절에서부터 예수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전 경내에서 던진 질문들에 대답한다. 그리고 누가는 이 활동을 “성전에서의 가르침”이라 부른다(19:47;20:1;21:37;22:53). … [p. 61]

Tannehill (Luke)도 같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표현이 누군가의 집이나 거처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 사례는 많이 있다. 예수는 그의 부모가 자신을 찾을 장소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암시하는 중이다. 따라서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장소가 이 표현의 의미에 속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중적인 의미의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동일한 표현이 누군가의 “일”이나 “업무”를 지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수는 자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그 이유를 암시하고 계시는 중이다. 예수는 그의 아버지의 업무에 종사하라는 부르심을 이미 느끼고 있다. [p. 76]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스스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규정하고 자신이 해야만하는 그 일을 선언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다른 번역은 “내 아버지의 일에 관여해야 한다”입니다.

헬라어 표현을 문자적으로 사용하면 “∼이 필요하다/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후에 하나님께 대한 의무나 성경의 성취를 암시할 때 “내가/그가 해야만 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본문과 같이 종종 다른 사람들이 예수께 기대하는 것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게 될 것입니다.

무리들은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머물기를 원하지만, 예수는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파 해야만 한다(4:43).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9:22;참조, 13:33;17:25;24:7,26)
예수는 삭개오의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19:5). 아마 그 행동을 종교적 기득권층들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19:5).
예수는 성경을 이루어야만 하신다(22:37; 24:44).

우리 삶에 서로 상충하는 요구들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종종 그 경쟁은 두 가지 선한 것들, 예를 들어 가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12살의 예수가 부모를 저버리고 자신의 뜻에 따랐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12살의 예수는 ‘에토스’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 길 위에서 해야만하는 일을 알게 된 장면이 오늘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 사람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십시오. 가능하다면 정열적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또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해야만 하는 일을 알게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한 한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모두에게 임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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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