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2장 만유의 주 앞에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16번 구주강림(2)
(인도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회중)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인도자)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회중)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인도자)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회중)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인도자)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회중)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인도자)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회중)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인도자)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회중)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인도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회중)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인도자)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회중)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10)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누가복음 3장 1~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 말씀은 누가복음 3장 말씀입니다. 누가는 3장의 시작을 다른 복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세계’의 역사를 통해 요한의 사역을 알린 것입니다.
역사가로 누가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1장 3절에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모든 사건들을 그 근원부터 조사하여 순서대로 적어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도 모든 사건들을 데오빌로가 알 수 있는 통치자들과 시기들로 알리고 있는 것이지요. 1장 5절에서도 “유대 왕 헤롯 때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사가랴요”라고 비슷한 방식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가이사 아구스도와 구레뇨를 언급함에 의해 예수님의 출생의 시기를 언급합니다(2;1-2).
누가는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요? 이 정보들을 제공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누가에게 역사적 상황이 중요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고 해석되며 역사의 중심이 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인식이 중요한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
둘째는 모든 로마 통치자들에게 예수님이 로마 황제, 즉 가이사에게 대항하고 있다는 고발은 예수님의 적들이 지어낸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을 알리고 싶은 누가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도 생겨나길 기도합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였다.”(누가복음3:2)
누가는 방금 전,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인 황제 디베료에 대해 말했고, 여섯 명의 다른 정치, 종교적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디베료 황제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에 들어갈 특권이 있는 유일한 제사장인 가야바에게 임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로마나 예루살렘에서나 성전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마리아 찬가에서 마리아는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고 말하였지요. (1:52).
우리는 하나님이 부적절해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하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것이 얼마나 뜻밖인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 그의 아버지가 사무엘에게 아들들을 내보일 때 거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어린 소년을 선택한 것은 뜻밖이었다! 하나님이 결혼하지 않은 소녀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이 얼마나 뜻밖인가! 하나님께서 요한을 선택하신 것이 얼마나 뜻밖인가!
우리들도 우리의 부르심을 의아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늘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장소로서 부적절해 보입니다. 왜 예루살렘이 아닌가요? 성전이 거기에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의 선포를 듣기 위해 광야로 가지 않은 한, 요한의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광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만드신 장소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한 곳입니다. 예언자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수님도 곧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삶이 가장 척박할 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요단강 주변에 있는 온 동네를 두루 다니면서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누가복음3:3)
대림절은 어떠한 절기인가요?
누가복음 3장 4~6절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림절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 준비하는 때라면(6절), 우리는 3절에서 우리는 준비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과 나누고, 사람들을 정직하게 대하고, 힘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회개(metanoias)에는 생각의 변화, 즉 돌아서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뒤따릅니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요한이 “이스라엘의 많은 자녀들이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16) 사도행전 3장 19절은 이런 전환(돌아오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회개는 방향의 변화, 세속적인 충동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회개하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단어입니다. 동사“회개하다”는 14회 나오며(신약성서에서 전부 34회), 명사(회개)는 11회 나옵니다.(신약성서에서 22회).
아마도 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이 회개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헬라어 metanoeo/metanoia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인 noeo/nous와 “후에”를 뜻하는 전치사 meta가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뜻은 “나중에 생각한 것/덧붙인 것”이나 “재고/다시 생각한 것”이나 “마음이나 생각(성찰)의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에서 어떤 것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착한 생활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계명들에 복종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런 죄인들만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착하고, 도덕적이고 순종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자신과 하나님을 향해 “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의 또 다른 측면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죄”란 단어가 사용되는 모든 곳에서 “용서하다” 또는 “용서”란 단어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1:77; 3:3; 5:20, 21, 23, 24; 7:47, 48, 49; 11:4; 24:47).
사도행전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2:38, 5:31; 10:43; 13:38; 26:18)
∙“죄” “없이 함”을 받으라(3:19)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
∙“죄”를 “씻으라”(22:16)
로버트 카폰(Robert Capon)은 “거룩한 여우를 잡으라”는 저서에서 교회의 진정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도덕적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세상은 당연히 도덕적 사업을 하는 곳이고,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그 일을 매우 잘 해낸다. 세상의 도덕법들의 역사는 많은 철학자들의 노고의 결과물(기념물)이다. 그것은 놀라운 일치와 아름다움의 결과들이다. 하지만 세상이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교회는 세상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그 지루한 주제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 만성적으로 스스로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용서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용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향한 용서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용서를 선포합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길들을 곧게 하라.”(누가복음3:4)
누가복음 3장 4~6절은 이사야 40장 3~5절의 인용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즉 유대인 포로들에게 여호와의 돌아오심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메시야가 오실 그 길을 준비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다시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방해하는 어떤 장애를 제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또한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장애가 될까요?
폭력, 돈, 성, 약물, 그리고 힘의 남용과 같은 오래된 죄들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마도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순종하려 하지 않음이 포함되어질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 의로 발전할 수 있는 영적 교만이 포함되어질 것입니다.
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기간이 대림절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이들을 이사야와 요한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아질 것이며 굽은 길들은 곧아지고 험한 길들은 평탄해 질 것입니다.”(누가복음3:5)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누가복음3:6)
누가는 신약성서 저자들 중에 유일하게 이방인입니다. 마가나 마태는 “모든 육체가 함께 (주의 영광을) 볼 것이라”는 이사야 40장 5절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그것을 변경하여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6절).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 즉, 모든 종족, 모든 종파의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들을 필요가 있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이 종족, 출신, 종교, 교육, 정치, 그리고 부에 의해 구별되는 매우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대림절, 우리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도록 소망하며 준비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