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17번 구주강림(3)
(인도자)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회중)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인도자)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회중)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인도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회중)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인도자)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회중)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인도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회중)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인도자)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회중)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다같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사35:1-8상)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08장 그 어린 주 예수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누가복음 3장 10~1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 주에 대림절 두 번째 주와 세 번째 주에는 세례요한의 말씀을 전합니다.
누가복음 3장 10~14절은 오직 누가복음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메시야를 기다리며,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눅3:9)
세례요한이 자신을 쫓아온 무리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요한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눅3:10)
여러분이 세례 요한이라면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하라?” “겸손하라?” “정직하라?” “믿으라?” “거룩하라?”
그런데 요한의 대답은 우리를 무척이나 놀라게 합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눅3:11)
우리는 왜 세례요한의 대답에 놀라게 되는 걸까요? (여러분은 놀라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아마도 사랑할 순 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한다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마음 하나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라. 나누라. 거룩하라. 이런 말씀에는 네, 하고 쉽게 대답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적당히, 내가 생각한대로 사랑하고 나누고 거룩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한의 말씀이 너무도 현실적이고 너무도 구체적이어서 흠칫 놀라게 됩니다.
옷을 두벌 가졌으면 없는 사람에게 하나를 나누어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세금은 정해진 대로 더 받지 말고 남의 것을 강제로 뺏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월급으로 만족하라.
세례요한은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하는 “경제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들이 서로 자신의 재산을 공유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 부분을 그리스도인의 또다른 중요한 특징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이지요. 사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끊임없이 이 부분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네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한국교회의 대다수 교인들은 이 말씀에 수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더 잘살고, 더 성공하기 위하여?
더 잘살고 더 성공해서 사랑하고 나누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은 아닐까요? 그런데 요한은 지금 우리에게 사랑하고 나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누가에게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첫째 회개하는 사람(변화한 사람)이고 둘째는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실천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should we do?")라는 질문의 네 단어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다 (do, poieo)
14절에서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poieo)는 8절과 9절의 (열매) “맺다”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자연적으로 “맺는 것”처럼, 무리들, 세리들, 군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한 “행동”(doing)은 회개, 즉 마음과 생각과 삶(과 뿌리)의 변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회심한 사람은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회개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바르고 좋은 열매를 맺게됩니다. 음식과 옷을 나눠주고 자신의 형편에 맞는 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지 않지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런 열매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해야 한다(should)
영어 동사 “should”가 헬라어에서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영어에서는 가정법 동사형을 표현하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해야한다.”는 표현은 “의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해야한다는 표현은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요한에게 질문하는 무리들은 “이제 우리가 회개했으므로, 즉, 우리 마음과 생각이 변화했으므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구원받고,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길 원하는 것을 하길 원합니다.”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해야한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해야한다.”는 말에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 “해야할” 일을 질문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we)
누가는 “우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우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14절). 누가복음 3장에 등장하는 우리가 누가인가요?
먼저는 무리이고 둘째는 “세금 징수원들”, 더 적확한 번역은 “통행세 징수원들”입니다. 셋째는 “군인들”입니다. 즉, 우리는 그들 “그룹”(group)입니다.
요한이 이 그룹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시에 잘못되었지만 용인되고 있는 시스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리나 군인 한 사람이 동료들의 일반적인 행동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하나의 그룹으로서는 가능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소명을 받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들이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크리스천 교사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만 합니다. 크리스천 간호사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만 합니다. 크리스천 공무원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만 합니다. 지금 함께 있는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what, ti)
요한은 무리에게 우리가 종교행위라고 부르는 일들을 하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 주일 교회에 가라”거나 “매일 성경을 읽으라”거나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라”거나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라”거나 “수도회에 가입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학자 월터 필그림은 Walter Pilgrim (Good News to the Poor: Wealth and Poverty in Luke-Acts)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 언급된 코트는 실제로 몸에 바로 입는 속옷이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이런 두 개의 의복만을 소유했는데, 하나는 매일 입는 의복이고, 다른 하나는 안식일에 입는 의복이었다. 그러나 매우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두 개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갖지 않는 사람과 나눌 것을 요구받았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무리들에게 이것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문제이다.
요한의 가르침은 자기의 풍성한 가운데서 나눠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잘살고 더 성공해서 나누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 나누고 또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요한은 그들에게 직업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것을, 다시 말해 다른 군인들과 세리들과는 다르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과연 다른 크리스마스가 될수 있을까요?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에 그 대답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28장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