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21번 주현절(1)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회중)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인도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회중)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인도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회중)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회중)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인도자)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회중)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인도자)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회중)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시36:5-10)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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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82장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누가복음 3장 15~2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부터 주현절이 시작됩니다. 2022년 사순절은 3월 2일 수요일이 시작되는데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까지가 주현절에 해당됩니다.

“주현(主顯)”은 “나타나다”, “알리다”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리는 것일까요? 누가는 하늘의 음성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내 아들”임을 알리는 때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세례를 받았는지를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는지를 듣지 못합니다. 누가의 주된 관심은 세례가 아니라, 세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첫 번째 부분인 3:15~17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의 성서본문에서 소개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 본문 말씀은 또다른 특징을 보여주는데

1) 15절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며

2) 16절은 마가복음과 매우 비슷하고(마가1:7-8)

3) 17절은 마태복음의 자료 (마태3:21)입니다.

누가는 예수와 요한 사이의 어떤 만남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세례에 관해 듣기 전에, 우리는 요한이 감옥에 있다는 정보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누가는 역사를 세 가지 다른 시대로 구분하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언자들의 시대로서, 거기에 세례 요한이 포함됩니다. 이 시대는 요한의 투옥으로 끝나고 요한은 더 이상 장면에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그 이후에 예수님의 때가 오늘 본문에서 (1) 하늘의 열림, (2) 성령이 가시적인 모양으로 내려오는 것, 그리고 (3)하늘의 음성에 관한 진술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대는 승천에서 끝이 납니다. 그 후 예수님은 더 이상 장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셋째, 성령의 시대(또는 교회의 시대)가 사도행전 2장1-4절의 (1)“하늘로부터” 오는 어떤 것과, (2)성령이 가시적인 형태(불의 혀)로 내려오는 것, (3)하늘의 음성에 관한 진술로 시작되지요.

누가의 시각으로 보면 옛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이동은 옛 시대와의 단절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우리가 세 번째 시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있다는 것을 매순간 떠올려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의 신자들에게 신앙은, 오늘의 삶을 위해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낸 것입니다.

새해, 2022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결심하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가 그리스도인가?

누가복음 15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요한에 관해 혹시 그가 그리스도인신가 생각하였다.

그는 누구인가? 세례 요한에 대한 소문은 더 큰 소문을 만들고 그에 관해 모른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이르게 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

그가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구약 당시 왕, 선지자,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관습에서 유래된 표현)란 뜻의 히브리어 ‘마쉬아흐’(메시야)의 헬라어 표기입니다.

여기서 ‘구원자’란 뜻의 ‘예수’는 히브리어 ‘예호슈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의 단축형인 ‘예슈아’의 헬라어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 우리의 왕”의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그리스도?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을까?

그가 베푸는 세례가 다르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합니다. 요한은 그 자신과 예수를 세 가지 면에서 구별합니다.

첫째,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16b절).

둘째, “그는 성령((pneumati hagio)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16c절). 나(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것이지만 예수는 거룩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

셋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17a절).   그(예수)는 심판자이며 그(예수)의 목적은 알곡을 구원하는데 있다.

‘세례’의 헬라어 ‘밥티스마’는 ‘씻는다’ 또는 ‘깨끗하게 한다’는 뜻의 ‘밥티조’에서 온 말로 “세례를 베풀다”는 헬라어 단어는 압도되거나 잠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새로운 삶이 가능한 원동력이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압도적이거나 잠긴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른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면서 예전의 방식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결과는 과거와 같은 삶.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압도적인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요한이 말한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과거 모세 시대의 정결 예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예수)가 베푸는 세례는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는 새로운 시대의 선언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의 세례는 압도적이어서 세례 요한은 흉내를 낼 수조차 없습니다.

그가 베푸는 세례는 보이는 세례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례가 우리 위에 압도적으로 임할 때 우리는 비로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내 아들”이기 때문이지요.

기도하는 예수

누가복음에서는 기도하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에게서 내용들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3:21 예수는 세례를 받고 기도하신다.

5:16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신 후에 예수는 물러가 기도하신다.

6:12 열 두 제자를 선정하신 후에 예수는 기도하신다.

9:18 제자들이 예수에게 질문을 하기 전에 예수는 기도하신다.

9:28-29 변화산에 가기 전에 예수는 기도하신다.

누가복음에서만,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담하지 말아야 할 필요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18:1-9) 누가복음에서만, 예수님께서 성전에 기도하러 간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고 있지요.(18:10-14)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곤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와 같은 형체로 예수님께로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 성령이 내려오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는 너를 매우 좋아한다.”

하늘의 열림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열리다”와 함께 “내려오다”, “들리다”를 읽어보면 결국 내려오기 위해서는 열리고 들려주기 위해서도 열려야하는 것으로 누가는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내려오다

성령이 예수님 위에 내려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사야 61장1~2절을 인용하고 있는 누가복음 4장 18~19절 말씀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신학자 크래덕(Craddock (Luke, Interpretation Commentaries))은 성령의 오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내려 와서 예수님에게 사역을 위한 능력을 부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논쟁하기 보다는 성령의 능력을 이해하고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는 바로 그 능력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하늘로부터의 음성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너를 매우 좋아한다.” 또는 “나는 너를 매우 기뻐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시험에 직면하고, 곤경에 처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광의 삶이 아니라, 십자가로 나아가게 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시험에 들어있고, 곤경에 처해 있다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예수님께서 들으신 그 말씀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사랑하는 딸이다.”

“나는 너를 매우 좋아한단다. 나는 너를 매우 기뻐한단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매우 기뻐하시는 것”인가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하고” “매우 기뻐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관계에 따라 살아갈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계 안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새로운 삶이 이러한 삶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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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