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17번 구주강림(3)
(인도자)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회중)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인도자)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회중)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인도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회중)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인도자)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회중)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인도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회중)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인도자)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회중)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다같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사35:1-8상)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말씀 _ 누가복음 3장 7~18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누가복음 3장 1~6절까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이 결론은 3절의 “회개의 세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 지난주 말씀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앞으로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너희에게 말하여주었느냐?"
세례 요한의 마음이 읽혀지시나요?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쏟아냈을까요?
세례 요한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례’를 받는 것이 다가올 진노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 신이 있다는 건 알지? 안 믿나? 그 신이 있는데 말이야, 곧 진노가 있을거래! 쉽게 말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거지. 또 ‘세례’를 안 받으면 ‘징벌’이 있을거래! 근데 요한이라는 자한테 가서 ‘세례’를 받으면 그 ‘화’를 피할 수 있다는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지요. 나쁜 일을 막아주고, 나쁜 일을 피하게 해주는,,,
2020년 기준 정부통계 추산 “무속인, 역술인” 등 점술 산업인구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4년 전 정부 추산 통계이기에 지금 2024년 현재 기준은 110만 정도를 추정한다고 하네요. 이 무속인을 소개하는 글 들에 등장하는 단어가 ‘살殺’입니다. 사람이라 재물을 헤치는 나쁜 기운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런 ‘살’를 없애기 위해 부적을 쓰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례가 다가올 징벌을 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세례 요한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여기서 “합당한”이란 단어 아시오스(axios)는 원래 저울의 균형 이미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과 동일한 무게를 가져야 하는 추의 이미지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가치가 있는,” “동등한,” “기준에 부합하는,” 또는 “상응하거나 비교 가능한”이란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가 자연스럽게 열린다고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악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누가복음 6:43-45)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예레미야 2:21)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이사야 5: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한복음 15:1)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한복음 15: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여러분은 열매가 자연스럽게 열린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예수에게 붙어 있어야” “우리 안에 예수가 거해야” “예수를 떠나지 않아야”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합니까?”(10-14절)
무엇을 해야 예수에게 붙어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우리 안에 예수가 거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예수를 떠나지 않는 것인지요?
14절에서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8절과 9절의 (열매) “맺다”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런 선상에서 살펴보면 좋은 나무가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회개”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단지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고 회개의 세례를 받는 이들은 좋은 열매(행동)을 맺을 것이고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행동”은 회개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변화된 생각과 마음과 삶(과 “뿌리들”)에서 나오는 것으로 진정한 회개는 분명 바르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요한의 선포에 그들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모인 무리는 그 순간 ‘회개’하였습니다. 생각을 다시 한 것입니다.
무엇일 해야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될까요?
말씀의 순서대로 찾아 보겠습니다.
1.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할지 말라
2.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3.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4.지시받은 것보다 더 많이 받지 말아라(세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정직하라! 착취하지말라!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지 말아라!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아라! 자기가 받은 봉급으로 만족하라!(당시 군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해석은 다양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말씀들을 읽으시면서 어떠한 마음이 드셨습니까?
다시 이러한 대답을 듣기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린 그들은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 질문은 영어로는 (What should we do?)입니다.
해야 한다(should)
“해야 한다”(should)는 단어는 “너는 반드시 이것을 해야 한다”거나 또는 “너는 저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에서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해되서는 안됩니다. 억압적인 “해야 한다”로 표현된 의미가 아닙니다.
가정법은 의무를 나타낼 수 있지만, “당신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느냐?” 또는 “우리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의지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법을 강제하거나 사람들에게 “이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먼저입니다.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입니다. 먼저 그들이 물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 갈 때의 지침을 요구한 것은 독사의 자식들로 불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그 질문은 바로 “ 우리가 회개했으므로, 즉, 우리 마음과 생각이 변화했으므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구원받고,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길 원한다.”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을 찾으실 때까지 물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대답을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소명받은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대림절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것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양 _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