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61번 시편142편

(인도자)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회중)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인도자)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회중)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인도자)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회중)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인도자)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파난처도 없고
(회중)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회중)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인도자)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회중)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인도자)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회중)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1-7)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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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씀 _ 누가복음 4장 14~21절 오늘, 이루어졌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지니시고 갈릴리고 돌아 가시자 그 소문이 주변에 있는 모든 지역에 두루 퍼졌다.” (4:14)

이 성령의 능력은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이끌어 40일 동안 사단의 시험을 받게 하신 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4:1-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을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으며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성령의 능력을 지니고 다시 돌아오셨음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지니시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곳에 함께한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칭송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14~15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장면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가 자라나신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고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들어가셨고 말씀을 읽기 위해 서셨습니다.

누가복음-사도행전에 따르면, 회당에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반드시 이 순서대로는 아니었습니다.

참석자가 두루마리를 가져오고, 두루마리가 펼쳐지고, 히브리어 성경(율법, 예언서, 성문서)으로부터의 가르침이 있고, 성스러운 두루마리를 읽고, 성스러운 본문에 대한 간단한 (미드라쉬)해석이 있고, 두루마리를 말은 다음에 읽은 내용에 대한 반응이 있고, 맡은 자가 두루마리를 갖고 떠났습니다.(누가복음4:16-17;사도행전13:15).

회당 참석자들 중에는 유대인(일반인들, 회당 지도자들, 바리새인들,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 이방인들, 남자와 여자들, 다양한 질병을 앓는 사람들, 귀신이나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눅 4:16-33, 44; 6:6; 12:11; 13:11; 사도행전 14:11). 몇몇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기타 지도자들 및 부유한 사람들이 몇몇 회당들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으며(눅 11:43, 20:46), 누가복음에 따르면 회당은 재판과 중재의 장소였을 것입니다.(12:11, 21:12).

참석자가 예수께 성스러운 두루마리를 넘겨 준 후에,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펼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사야의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한글표준새번역 누가복음 4:18-19)

예수께서 말씀을 읽으신 후 회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께 쏠렸습니다.

그들의 놀란 눈, 흔들리는 수많은 눈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이 너희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해졌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회당에서 읽으신 말씀은 이사야 61장 1~2절과 58장 6절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1)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58: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영적이다”는 것은 세상을 떠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깊이 연결되고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게 되면 우리가 “사회적 사역”이라고 부르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와 무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의 이사야서 인용에는 우리를 위한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정의에 관해 말씀하는 중입니다. 좋은 소식은 여러분이 지금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쁜 소식은 그 여정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창조물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투쟁입니다.

오늘”은 누가에게 중요한 단어입니다. 누가복음에서 12회 나오는데, 다른 세 복음서에서 모두 합해 9회만 나옵니다.

이 단어는 “오늘 다윗의 집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가 태어났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와 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절들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삭개오 이야기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삭개오야, 즉시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만 하겠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 본문에서 등장합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누가에게 오늘은 철저한 변화의 순간입니다.

목자들이 와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구세주를 봅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돌아갑니다.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께서 집에 방문하신 후에 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지금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 소유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군가를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오늘은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발생하는 변화의 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오늘의 변화들을 회피합니다.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과거 속에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옛 시절을 기억하라,” 그들은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언급하며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또 다른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들의 모든 고통이 그들이 싫어하는 과거 때문이라고 되내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과거를 변화시키기 위해 오늘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어제가 영광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내일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매우 평범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틀에 박힌 생활을 합니다. 오늘은 단지 또 다른 하루 일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오늘”은 예수의 청중들과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만약 오늘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날이라면, 만약 오늘이 위대한 날이라면 모든 기적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이 그런 특별한 날이라면, 왜 나는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예수는 그저 회당에서 몇 마디 말씀을 하는 중입니다. 번쩍이는 빛이 없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이 성경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이사야의 선포가 오늘,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오늘은 지금 행동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결정을 내리길 원하지 않는다.”고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요구가 여러분을 안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예수에게 임한 것처럼, 여러분 각자에게 그 동일한 성령이 임하십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과 눌린 사람을 위해 일하라는 부르심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청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혼자가 된 부모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주변의 억압받는 자들에 관해서는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이것들은 이상적이고 불가능한 꿈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는 불가능한 것이 오늘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겐 불가능한 오늘을 누군가는 오늘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2000년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시작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한다면, 그것은 일 평생 동안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길을 따라 가다보면 위대하고 훌륭한 순간이 있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고 우리는 매 순간,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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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길을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