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71번 이사야 55장

(인도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회중)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인도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회중)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인도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회중)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도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회중)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인도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회중)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1-3)
(인도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회중)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인도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회중)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다같이)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6-7)

송영 _ 찬송가 2장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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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말씀 _ 누가복음 21장 5~19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묵시문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태복음(24:1~25)과 마가복음(13:1~37)에 등장하는 오늘의 말씀은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향한 말씀으로 전하고 있지만 오늘 누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세개의 문학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예언문학, 지혜문학, 묵시문학이 그것입니다. 모두가 미래적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현재와 주된 관련이 있습니다.

예언문학
∙현재는 고통의 시기이다.
∙이유? 사람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회개하면 미래는 축복의 시기가 될 것이다.
∙목적: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현재의 그들의 길들을 바꾸라고 요구하는데 있다.
지혜문학
∙현재가 축복이나 고통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이유? 원인과 결과의 체계: 의롭게 행한다면 축복받지만, 그릇 행하면 고난 받는다
∙미래는 계속해서 의를 행하느냐 불의를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목적: 사람들에게 현재에 계속해서 의롭게 살아가거나 그렇게 살아가기를 시작하라고 격려하는 데 있다.
묵시문학
∙현재는 고난의 시기이다.
∙이유? 세상은 신실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한 권세 아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운명이 반전된다. 지금 고난당하는 신실한 의인들은 상을 받게 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경건치 못한 악인들은 (늘 다른 세계 또는 재창조된 세상에서)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목적: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현재 동안 신실함과 인내를 유지하라고 격려하는데 있다.

이렇게 볼 때, 적어도 세 가지 시점에서 오늘의 말씀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시기로서, 성전이 멸망하기 전

(2) 누가가 이 말들을 기록하고 (그의 청중들이 이 말을 들은) 시기로서, 성전이 멸망한 후

(3) 강론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하고 나서 수세기가 지난 후에 살고 있는 우리 청중들의  현재시기.

Craddock (Luke)은 21장 5-38절에 대한 그의 주석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중대한 역사적 위기 때마다 묵시적 사상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예루살렘의 멸망은 우리가 제4에스라와 제2 바룩서로 알고 있는 묵시록들뿐만 아니라 예수의 묵시적 연설을 유발했다. 다시 말해, 이 형태의 묵시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 혼합되어 있고,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이란 더 큰 맥락에서 설정되고, 상징들, 징조들, 그리고 신비적인 비유적 표현들이 가미된 역사적 설명들이 있는 특별한 기록이 된다. 이 문학이 우리에게 낯설어 보일 수가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강한 믿음과 소망이 있다는 드라마틱한 증거이다. 고통스러운 장기간의 고통의 한 가운데서 재난으로부터의 구출을 역사적 지평에서 예견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재 불행의 종식과 다가올 새 시대의 시작을 위해, 믿음이 하늘을 향해 그 얼굴을 든다. [p. 243]

묵시와 같은 형태의 문학은 큰 박해와 고통의 시기동안에, 신자들에게 신실함으로 고난에서 살아남으라고 격려하기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현재는 어떠할까요? 우리는 누가를 통해 전하진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성전의 파괴(5-6)

누가의 독자들에게 성전의 아름다움은 기억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화려한 영광에 대한 논의가 예수께서 그녀의 모든 것을 성전 헌금함에 바친 극심하게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직후에 배치한 것은 아마도 누가의 의도일 것입니다.(21:1-4).

지금,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누가가 성서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성전은 더 이상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집이 파괴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계속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강력한 세력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모든 것이 파괴될 때, 어떻게 계속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세상과 때때로 이런 악과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계속 믿을 수 있을까요?

누가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날들이 오고 있었고, 이미 왔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돌들이 모두 쓰러졌는데, 실제로 돌들은 불태워졌지요.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질문은 “언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었다. “그런 일들이 지금 발생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이 무슨 뜻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종말이 오기 전의 징조들(7-11절)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21:7)

질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입니다.

1. 언제? 그 대답은 ‘알지 못하는 어떤 때’인 것 같다. “그것이 끝은 곧 아닐 것이다”(9d절). 누가의 시대에 성전이 파괴되었다, AD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하늘에 온갖 종류의 징조들을 일으키면서, 폭발하였다. 이 사건들 직후에 살고 있는 누가의 청중은 종말이 즉시 발생하거나, 조금 있다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2. 어떤 징조?(“징조”가 단수임에 주목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실 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바로 이 질문이다.

“징조”가 단수이기는 하지만,  “이 일들(tauta)이란 복수 표현이 강론에서 자주 등장한다.

∙6절 너희 보는 이 일들
∙7절 어느 때에 이 일들이 있겠사오며(NRSV에서는 “이 것”을 번역함)
∙7절 이런 일들이 일어나려(ginomai)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9절 이 일들이 먼저 있어야(ginomai) 하되
∙12절 모든 일들 전에
∙28절 이런 일들이 되기를(ginomai) 시작하거든
∙31절 너희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ginomai) 것을 보거든
∙36절 장차 올(ginomai) 이 모든 일들을 능히 피하고

“이 일들”은 단지 성전의 파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 모든 징조들/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말씀의 때가 오늘 우리의 현재가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 지구의 어딘 가에서 전쟁들과 폭동에 대해 듣지 못한 것이 언제인가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언제인가요? 땅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하늘에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없던 적이 언제인가요?

예고된 박해들(12-17)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체포되고 박해당할 것이다.
∙여러분은 종교당국과 세상당국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여러분은 그 당국자들에게 예수에 관해 증언할 것이다.
∙여러분은 가족들에 의해 배반당할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몇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여러분은 나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구절들을 해석할 때, 우리는 두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체포당하고 박해받을 것을 상상하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난 무엇을 해야하는지? 질문하는 것이지요.

1세기 말에 신자들의 진정한 질문은, “지금 이 일들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고발하는 자들에게 대항할 지혜를 위해 예수님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돕는 이가 바로 성령입니다.

그 때가 바로 우리를 증언할 때입니다.(21:13)

13절의 증거(또는 증거의 기회)를 뜻하는 단어는 마티리온(martyrion)입니다. 이 단어가 영어에서 “순교자”, 즉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증언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를 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예수님은 “미리 염려하지 않겠노라”라고 마음에 다짐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묵시문학의 공포는 공포라는 다가올 일들을 하나님께서 통제하시고, 하나님께서 신실한 사람들을 찾으셔서 보호하실 것이라는 위로의 확증이 있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영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고된 보호(18-19)

Tiede (Luke)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8-19절에서 보장은 박해나 죽음의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너희 머리의 털”에 관한 보장은 전통적인 격언이다(참조, 사무엘상 14:45;사무엘하 14:11;열왕기상1:52;사도행전27:34). 그러나 이 경우에 이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에 대한 보장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누가의 인내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마라톤 같이 오랜 노력을 요하는 결정을 의미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의존을 의미한다(참조8:15). 따라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죽는 동안에 박해를 이기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단지 “영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생명을 지킬 필요를 초월하는 생명과 구원의 약속이다(9:24). 죽음은 육체적으로 현실이고 따라서 대적자들도 마찬가지이다(참조, 12:4-5). 그러나 부활의 소망은 하나님의 의에 근거한다. 육신을 죽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에 맞설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희망이다. 그 희망은 박해와 살인으로 신실한 자들을 위협하고,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속임수를 폭로한다(참조 17:33). [p. 362].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런 일들이 오히려 우리를 증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미리 염려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다짐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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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