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2번 시편119편
(인도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회중)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인도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회중)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9-12)
(인도자)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ㅇ든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회중)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15-16)
(인도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회중)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대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인도자)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회중)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인도자)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회중)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92-97)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말씀 _ 누가복음 5장 1~10절,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이 본문은 일반적으로 “어부들을 부르심”(한글개역성경의 제목은, 어부들이 예수를 따르다)이란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이 어부들을 결코 부르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 보시지요.
누가복음 5장 1~11절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는 어부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 1:16-20과 마태복음 4:18-22의 어부들을 부르시는 기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는 시몬에게만 말씀십니다.
이후에 예수는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내리실 것이고(5:27).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5:11,28).
다르게 설명하면 예수는 시몬(과 다른 어부들)을 부르기보다는 시몬(과 시몬에게만!), 지금 무슨 일을 하게 될 지를 선언(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리를 가르치심(1-3절)
엄청나게 잡힌 고기(4-7절)
시몬과 예수(8-11절)
먼저, 1~3절 말씀에 따르면
어느 날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는데 무리가 그에게로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고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들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는 시몬의 배에 오르신 후,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을 것을 요청하셨고 배에 앉으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게네사렛은 낯선 단어이지요. 게네사렛 호숫가가 바로 갈릴리호수입니다.

게네사렛[ Gennesaret ] ‘열 동산’이란 뜻. 갈릴리 호수 북서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길이 6㎞, 너비 4㎞에 걸쳐 펼쳐진 비옥한 평원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게네사렛 호수’(눅 5:1)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무화과, 감람나무, 종려나무 등 수종(樹種)이 다양하고 농사도 잘 되며, 수산물도 풍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가버나움, 막달라 등은 모두 이 지역에 속하는 성읍들이다. 구약 시대에는 ‘긴네렛’(신 3:17; 수 19:35; 왕상 15:20)으로도 불렸습니다.
이 호숫가에 어느 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예수는 지금, 사람들을 멀리하고 두 척의 배 중 하나에 오르셔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왜?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저는 4절 말씀을 보면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께서 시몬을 만나러 오신겁니다. 그 많은 무리, 예수님을 둘러 싼 무리들, 열심히 그의 말씀에 청종한 무리를 멀리하고 시몬을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예수께서 그 무리에 있지 않은 시몬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8~10절 말씀에서 다시 다루려고 합니다.
시몬을 찾아 오신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러자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사실, 이 고기 잡는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는 시몬의 집에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셨습니다.(4:38-39). 또한 예수께서 머무시는 장소가 변경되지 않고, 사람들이 데려온 각색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께서 치유했을 때가 그 날 저녁 늦게였으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여전히 시몬의 집에 계신다고 짐작할 수 있ㄷ고(4:40-41). 42절에서 예수께서 다음날 아침 떠나셨다는 말을 확인하게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시몬(과 다른 사람들)은 고기 잡는 사건 이전에 예수를 만나 많은 기적들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래서 시몬은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게네사렛 호숫가 그 무리에 있지 않았던 ‘시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면서 6~7절 말씀을 이어가 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고 다른 배에 있었던 동료들까지 손짓하여 와서 그물을 건지는데 고기가 너무 많아 두 배가 잠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여러분 각자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시몬의 반응입니다.
이 기적에 대한 시몬의 최초 반응은 예배(예수 앞에 그의 무릎을 꿇는 것), 무가치함(“떠나소서”), 그리고 고백(“나는 죄인이로소이다”)입니다.
Tannehill (Luke)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몬이 거룩한 것에 위해 위압되어 그 자신을 무가치한 죄인으로 바라보게 된 것으로 보아, 거룩한 것의 명시는 우리를 끌어당기기보다는 우리를 뒤로 물러서게 한다.”[p. 101]
시몬의 반응에 여러분은 공감이 되시나요?
시몬은 예수를 따랐던 그 무리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시몬에게 오셔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난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그 무리에 없었는데 굳이 내게 오셔서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Abraham Smith(텍사스 달라스, 퍼킨스 신학교 신약학 교수)는 이 부분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잠재적 지도자들은 과거의 실패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드라인에 머물러 있다. 선원들과 시몬의 동료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또 다른 날에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는 어부들이 해변가에서 바다로 시선을 돌리도록 다시 조정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과거의 실패를 딛고 현재의 새로운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신다.
둘째, 어떤 잠재적 지도자들은 현재의 약점들(연약함)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드라인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 하지만 시몬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셨다. 예수는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헌신된 사람을 찾고 계셨다. 그리고 훗날 시몬이 치유자의 길을 걷게 되든 아니든(누가복음 9:1–6; 사도행전 3:1–10; 9:32–35), 그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기 인식에서 시작해야만 했었다.
잠재적 지도자들은 죄 때문에-현재의 연약함- 때문에 좌절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의 상처에 대한 자기 인식은 네덜란드 신부 Henri Nouwen의 유명한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 나오는 개념이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흑인 영가 『Standing in the Need of Prayer』 속 후렴구인 “It's me, It's me, It's me, O Lord”(주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저예요)의 핵심이다. 리더가 될 사람들은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헌신이다.
셋째, 어떤 잠재적 지도자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기 때문에 사이드라인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 예수는 위대한 변화를 앞둔 사람들에게 확신을 제공하는 공식(문구)을 사용함으로써 초점을 어부들의 과거의 실패들과 현재의 약점에서부터 미래로 변화시킨다.
저와 여러분은 결과론적으로 시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 무릎을 뚫고 주님, 내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했던 시몬은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고 우리가 아는 교회의 반석이 됩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시몬을 Abraham Smith교수는 잠재적 지도자로 설명한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씨름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씨름을 넘어선 선포입니다.
그래서 ‘소명’ 부르심이, 아니고 선언입니다. 여러분이 부르심에 응답할지? 말지? 내가 합당한지? 아닌지? 이렇게 씨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5주 동안의 말씀입니다.
1.그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2.기도하실 때에
3.무엇이든지 말씀하시는대로
4.오늘, 이루어졌다.
5.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우리는 지난주와 같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지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줄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이 말씀들이 이루어짐을 믿는 2025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