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8번 시편106편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회중)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인도자)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회중)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인도자)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회중)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인도자)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회중)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인도자)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회중)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인도자)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회중)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인도자)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회중)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4-12)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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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말씀 _ 누가복음 12장 49~56절, 불을 지르러 왔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매일 암송하는 그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집 냉장고 문, 엽서, 연하장에서 볼 수 있는 구절들이 아니지요.

물론, 우리가 이 말씀을 암송하지 않는 것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좀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듣기 좋은 또는 편안한 말씀만을 듣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서의 말씀은 우리가 듣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씀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렇게 살펴보면 먼저 12장에 계속 흐르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참새를 보라, 바리새인들을 보라, 어리석은 부자들을 보라, 그리고 이 메시지는 10장에서 7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신 후로 계속되고 그들이 돌아올 때 선언하신 말씀이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누가복음 10:23-24).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누가복음 10:25절 이하의 율법학자, 마르다와 마리아(38-42),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더 명확하고 더 풍부하게 볼 것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증시가 가장 호황일 때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증시가 불황일 때를 예측할 수 있다. 불황은 반드시 증조 후에 온다. 그 증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49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잘 알고 있는 말씀은 “평안을 주노라”(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서로 다른 말씀처럼 들리시나요? 아닙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신의 떠남을 예고 하시면서 전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49절)는 풍부한 누가적인 표현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기 위해,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 정결하게 하기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채우기 위해,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을 위해 열심 있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동시에 심판이 수반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례와 불의 이중적인 이미지는 누가복음에서 3:16에서 이미 등장했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누가복음 3장 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다.” 여기서 “불”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49절 말씀은 50절에 이어지면서 ‘세례’라는 단어와 함께 이해되면 “정화”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50절).

여기서 사용된 세례는 신약성서의 다른 곳에서 물세례에 대해 사용된 것과 동일하지만 여기서 이미 일어난 물세례(누가복음3:21-22)를 언급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물에) “뒤집어쓰다/잠기다”는 뜻을 지닌 ‘세례’의 동사형은 여러 가능한 의미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이와 같은 세례가 등장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가복음 10:38).

만약 누가가 동일한 의미를 채택했다면,

이 때 “세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의 얼룩을 말끔하게 없애는,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서의 물의 범람(넘침)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세례와 죽음과의 연관성(the baptism-death of Christ connection)이 신약성서에서 다음의 구절들에서 명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 로마서 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골로새서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지”(표준새번역)/“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개역개정)는 표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는 희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기까지”라는 표현은 우리가 “성취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분명하게 알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성취하다/이루다”는 뜻의 헬라어 텔레오(teleo)는, 전에 기록된 말씀, 즉 주의 율법(2:39),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말씀”(18:31), “성경에 기록된 말씀”(22:37;사도행전13:29)을 “완성하거나” “이루는” 데 사용되고 이 성취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에 이릅니다.

 

화평과 분쟁/평화와 분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

그 나라의 도달은 평화와 일치의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반면에 그 나라의 선포는 분열의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6-21)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다가올 심판에 직면할 때 우리의 결정과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분열입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기 위해 오셨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는 강조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평화를 주시고, 그 평화는 사람들 사이의 참된 평화로 인도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평화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예언자들의 말이 분열을 일으킨 것처럼, 예수의 메시지는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했는지, 사탄에게 속했는지를 결정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이미 그런 분열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11:14-20).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그 속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바르게 결정해야만 합니다. (11:35).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9:23, 14:27).

신학자 Culpepper (Luke, New Interpreters Bible, p.267)는 이 구절에 대해 이런 성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심판에 관한 경고는 우리의 헌신(commitments)이 함축하는 바를 점검하게 한다. 마치 그 헌신이 삶의 다른 영역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삶의 한 영역에서 헌신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전에) 예수는 그에게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겪게 될 것이고, 믿음의 헌신은 또한 물질적 소유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그리고 도덕적 책임들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어야만 한다고 경고하셨다.
지금 예수는, 그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 헌신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우리가 친구들과 가족구성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헌신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이신 그리스도께 헌신할 수 없다. 우리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은 우리의 가치, 우선순위, 목적, 그리고 행동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옛 생활방식들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들은 중대한 인간관계들에서 위기를 촉발할지도 모른다.”

 

시대의 징조들

“너희는 땅과 하늘의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지금 시대는 분별할 줄 모르느냐?”

분별하다는 단어는 56절과 57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해석해야만 하고(12:56)고 옳은 것은 판단해야만 한다(12:57)”

56절에서 두 번 나오는 “분간하다”는 단어는 ‘해석하다/판단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이 단어군의 기본 의미는 “시험하다”입니다. Lowe &Nida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검사와 실험, 종종 실제적인 사용을 통해 무언가의 진위를 알려고 하는 시도

2)무언가를 가치 있거나 적합하다고 간주하는 것

3)시험에 근거하여 무언가를 진짜이거나 가치 있다고 간주하는 것

 

여러분, 이 시대를 분별하고 계십니까?

다음은 이 절들에 대한 Culpepper’s (Luke, New Interpreters Bible, p.269)의 성찰의 일부입니다.

“때의 징조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보지 못함은 어디에나 있었다. 날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예수는 다가오는 분열과 시대의 특성에 대해 경고하신 후에 무리들에게 한 번 더 판단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는 실제로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57절)고 그들의 성찰을 요구하신다.
누가복음에서 지금은 예루살렘 여행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제자들과 사람들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12:58). 그들은 너무 늦기 전에 지금 그들의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들이 그들을 고발한 사람과(이 경우에는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요구한 선지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올 때 그들은 더 곤란하게 될 것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부주의한 채무자들은 마지막 한 푼까지도 다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헬라어의 이중 부정법은 예수의 진술을 강조한다. 즉, 너희가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결단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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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