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4일 성령강림후 제2주
바울(Paul)은 ‘작은 자’, ‘작음’이란 뜻으로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순수 히브리인입니다.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유대교와 유대 전통에 정통했던 사람,(롬 11:1; 고후 11:22; 갈 1:14; 빌 3:5-6).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고(행 21:39; 22:3), 태어날때부터 로마 시민권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행 22:25-28). 히브리 본명은 ‘사울’입니다.
사도 바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말씀을 통해 계속 전하기로 하고 오늘은 로마서 5장 말씀을 충실히 전하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제3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A.D. 53년경에 수리아 안디옥에서 3차 선교여행을 시작하여 약 5년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A.D. 58년경). 이 기간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간 목회하였고(행 20:2-3, A.D. 54-56년경), 그 후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서 대략 3개월 정도 체류하였습니다(행 20:2-3, A.D. 57년 말). 이 시기에 로마서를 기록한 것으로 3차 선교여행 말기인 A.D. 57년 말~58년 초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왜 이것 밖에 안돼?" "그렇게 기도해도 안되는 거라면? 뭐하러 기도하는 거야?"
"믿음은 무슨? 다 의미없는 짓이지 하나도 변한게 없어."
제 나이가 30살이 넘을 때까지 가장 많이 생각한 내용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기도한다고 금식도하고 그렇게 절절하게 기도하는데 왜 눈에 보이는건 변하는게 없느냐? 왜 삶이 나아지지 않는냐? 비난하는 것처럼 제 엄마에게 쏟아냈던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와 깨닫게 되는 것은 기도했기에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 만큼, 이 만큼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지난 길들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대로, 내 욕심만큼, 내 조바심 만큼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지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매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넘어 절대적인 도우심이 함께 하셨습니다.
제가 바라는대로, 마음대로 다 되었었다면 과연 이 자리에, 여기에 설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일부러 시험 하시고 우리를 고난에 빠뜨려 믿음을 보시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표현하는 심술궂은 하나님이 우리를 늘 시험하시는 걸까요?
이 세상은 물질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이고요.
우리 안의 혼란과 갈등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제같은 것입니다.
종종 대단하고 너무도 존경스러운 선교사님의 이야기,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무엇을 했나? 내세울 것 하나 없네. 사는 데 급급하고 그렇게 기도를 해도 달라진 것 없어보이는 현실에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움에 또 부끄러움에 마음이 요동을 칩니다.
그렇게 멋지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멋지게 살아내는지?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며 혼란스럽습니다. 주님, 어찌해야 하는걸까요?
그런데 오늘 로마서 5장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안의 믿음으로, 오직 그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신학적 용어로는 칭의 (稱義,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4-1546년)는 "칭의란 인간의 선행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고(고전1:30), 그것은 신자에게 외부에서 주어지는 '낯선 의'(iustitia aliena)"라고 보았습니다. 또 칼빈(John Calvin, 1509-1564년) 역시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칭의를 은혜로 간주하여 "칭의란 우리가 마치 의롭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은혜 속에 들어오도록 받아주심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롭다하심, 칭의는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이며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 때 우리의 상황과 결과가 아니라 우리 안에 믿음이 있을 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힘겹고 어렵고 절망스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캄캄할 때 그 때 우리 안에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결과를 보고 "너는 성공했으니 의롭구나. 대단하구나. 훌륭하구나."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눈에는 대단하지 않고 휼륭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다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신실한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오직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때로 비참하고 처절한 그 순간에도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시는 이, 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실천에 첫 번째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가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는 은혜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또 그로 인해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4절)
환난, 어려움이지요. 이 환난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안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때가 환난의 때입니다.
일시적 어려움이 아니라 어려움이 계속 쌓이고 또 쌓여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을 때 그 때가 환난의 때인 것입니다. 환난은 곧 인내를 부르게 됩니다.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긴 여정,
그런데 인내라는 말을 쓸때는 끝까지 기다리고 참고 마침내 이루어질 그 때 인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가 인내의 비밀입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4절)
다른 말로 하면 인내가 연단을 부른다는 말씀인데 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연단은 한자어로 (鍊鍛)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하는 것이며, 어떤 일을 반복하여 익숙하게 되는 것이 연단입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을 보면 캐릭터(character)라고 쓰여 있습니다.
즉 성격, 기질이라 말입니다. 인내가 성격, 기질이 된다는 말이지요. 환난과 인내를 거쳐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잘 바뀔까요? 다들 아시지요? 참 변하지 않는게 사람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것이 어느새 10년이 되어 갑니다. 참 긴 세월이지요. 한 사람이 변한다는 건 우리 맘 같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해도 안 변하는 것 같을 때,
그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면 인내하게 되고 인내를 통해,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 단단하게 수 백번 수 천번씩 두드리다 보면 그 연단의 과정을 통해 훌륭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고백합니다.
연단을 통해 훌륭하고 빛나고 단단한 검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연단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정리해 보면 환난과 인내와 연단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로마서 5장 5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 졌기 때문이다.성령을 받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함께하시고 그 안에서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 말씀이 정말로 두려웠었습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 믿는 사람에게는 결코 환난이 오지 않을 것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환난이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 그 환난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음이 드러나는데
첫째는 환난의 때에도 우리와 항상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둘째는 환난의 때, 오직 우리 안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셋째는 환난은 인내와 연단을 통해 마침내 소망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단단하고 빛나고 훌륭한 소망의 검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줄 알고 있음에도 인내와 연단이 결코 쉽지 않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그 때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그리스도인,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아는 그리스도인, 이 말씀으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이
저와 여러분과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되시길,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