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성령강림 후 제4주, 순교자기념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억만장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충격을 더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아이들의 경우 학교에 가더라도 친구들과 말을 할 수도 없고 점심시간마저도 거리두기를 통해 혼자 밥을 먹으니 이런 일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을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계속된 사태에 무기력감과 외로움, 불안감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며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은 사실, 몸의 병보다 때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전염병과 같은 마음의 병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증상이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갑니다.
불안감과 두려움, 외로움 같은 마음 깊은 병들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세상의 언어대로 표현한다면 종교의 힘은 위로와 소망에 있을 것입니다.
파올로 코엘료의 책 “빛의 전사”에 보면 치열한 전쟁에 참여한 그가 용기와 의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를 지켜주는 천사가 그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해질무렵이면 늘 겸손히 무릎을 꿇고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는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그 곳에서 신이 함께하심에 그의 노력보다 큰 승리를 이룰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해야하는지 그 자신이 알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그 존재를 통해 우리는 외롭지 않을 수 있으며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소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위로와 소망이 될 교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매일 뉴스에 등장합니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교회의 문제를 부각하고 비난의 수위를 높여가고 그럴수록 저들도 위로 받을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데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들은 그들의 불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대한 비난의 프레임(frame of blame)을 택했습니다.
‘너희들도 별수 없다. 신을 찾는 너희들도 별수 없다.’
그들 안에, 믿음이 없었음에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던 신에 대한 두려움을 교회에 대한 비난을 통해 그들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들은 진정으로 교회가 위로와 소망이 되길 바라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저들 안에 깊이 파고든 불신의 늪이 저들을 더욱더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왜 저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지 못할까요?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왜 교회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로마서 본문 말씀이 가슴에 쿵 내려 앉습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 때가 언제입니까?
로마서는 로마에 흩어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입니다.
로마의 교회들은 유대 출신 기독교인들이 세운 것으로 교회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율법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교회의 법, 율법에 매여 그것이 그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더욱이 교회에 들어온 이방인들은 기독교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그들의 전통적 풍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가 만연한 로마라는 도시도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로마 교회의 상황이 바울에게 길고 긴 편지를 쓰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 때”는 율법에 매여 전통과 형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때,
이방인들의 전통과 풍습을 따르던 때,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상의 전통과 풍습을 따르던 때,
세상에서 살던 방식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던 때,
황제를 숭배하던 때, 다른 말로 권력과 힘과 성공과, 돈을 숭배하던 그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무슨 열매를 얻었냐?,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말의 뜻은 그 때에 아무 열매도 없었다는 바울의 질책이 담긴 말입니다.
“아무 열매도 없지 않느냐?”
한국교회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순교자 기념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130여년의 역사 속에서 순교자의 열매요, 그들의 열매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의 열매는 무엇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외로움과 불안으로 점점 지쳐가는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가슴 아픈 오늘의 상황에서
로마서는 다시 우리에게 갈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거룩함에 이르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로마서의 말씀을 따르면 열매,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열매는 거룩한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열매, 그것은 바로 거룩함,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의 열매는 거룩함입니다.
거룩(Holiness)은 성경 원문에서는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되었는데, 그 기본 의미들은 ‘구별하다’, ‘분리(구분)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즉,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속되고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레 11:44). 신약성경에서는 죄악과 구별된 도덕적인 삶(요 17:19)이며 세속적이고 비신앙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건한 행위를 말합니다(벧전 1:16).
이러한 거룩함의 열매가 우리와 교회 안에 풍성히 맺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은혜 안에 살아가며 우리의 몸을 의의 무기(instruments of righteousness)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때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 날에, 우리의 열매를 보고 저들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외로움과 불안과 두려움에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이 불안한 시대, 이 시대를 불확실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확실한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에벤에셀(Ebenezer)의 하나님이 이제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으며 임마누엘(Immanuel)의 하나님이 우리와 지금도 함께하시고, 여호와 이레(Jehovahjireh)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열매를 보고 이 시대에 교회가 다시 세상의 소망이 되는 그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을 진정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12: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