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교독문 123번 주현절(3)
(인도자)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계4:8하)
(회중)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인도자)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회중)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15:3하-4)
(인도자)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회중)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
(인도자)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하)
(회중)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7:12)
송영 _ 찬송가 4장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말씀 _ 마태복음 4장 12~2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때(12a)
오늘 본문은 요한의 “잡힘”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용된 단어 paradidomi(파라디도미)는 예수님을 “넘겨줌”(betrayal-가룟 유다가 주어일 때 이 단어는 ‘배반’으로 번역됨)을 뜻하는 전문용어로 요한과 예수님의 운명 사이 비슷한 점이 품고 있습니다.
요한이 왜 잡혔는지, 누구에 의해 잡혔는지는 14:1-12까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잡힘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평소 생각 말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은 평소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사셨다고 마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렇게 요한과 예수님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살아낸 요한은 그의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룬 온전하고도 완전한 삶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있을까요? 우리들의 평소 생각은 우리는 어디로 이끌고 있을까요?
장소(12b-16절)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긴 것을 마태는 이사야의 말씀의 성취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대하여 신학자 윌리엄 카터William Carter (Matthew and the Margins) 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을 떠나,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을 그의 거처로 삼는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서쪽 해변에 있는 (인구 천 명 정도의) 농업 및 어업 마을이다. 그는 (황제 디베랴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디베랴나, 제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세력의 중심지인 갈릴리의 세포리스(Sepphoris)와 같은 대도시들로 이동하지 않는다.
대도시들은 과세를 통해 엘리트들의 이익과 주변 마을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했다. 로마의 통제를 받는 영토에 사는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는 부유한 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와 함께, 도시의 엘리트들이 아니라 시골의 농부들과 함께, 힘이 강력한 사람들이 아니라 힘이 없고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변두리에 거처하신다.
예수는 계속해서 외견상으로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장소들과 사람들에 대한 복음의 선호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그 장소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2:5-6, 22-23; 3:1). [pp. 113-114]
예수님께서 옮기신 그 땅은 가난한 시골, 보잘 것 없는 동네, 변두리의 힘없고 약할 뿐 아니라 그래서 거칠고 서로의 상처가 다시 상처가 되는 그러한 동네입니다.
그래서 그 땅은 어둠이었고 죽음과 그늘의 땅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빛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땅에 사심”으로 말입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 떠올랐다.” (4:16)
Bill Easum은 그의 주관하는 워크숍에서 회중에는 셋이나 네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모든 결정을 내리는 결정자들(Deciders)이 있다.
2.그 다음에 결정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행동가들(Doers)을 찾는다.
3.세 번째 그룹은 무시당하는 사람들(the Ignored)이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라는 결정자들의 요구에 직면하지 않아도 된다. 결정자들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세 번째 그룹을 "Pew Potatoes"(문자적으로 “청중석의 감자들”이란 뜻인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유추됨)라고 부른다.
4.네 번째 그룹은 행동가들이 꿈꾸는 자들(Dreamers)이 될 때 시작된다. 그들은 무언가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교회에 제도적인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를 섬기기만 하는 위원회에서 섬기기를 거절하다가 결정자들에 의해 무시당하는 자들의 일부가 된다. 꿈꾸는 자들이 꿈을 꾸고 행동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혼란이 경험된다. 결정자들은 통제자들(Controllers)이 된다. 그들은 혼돈과 혼란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통제를 원한다. 대부분의 꿈꾸는 자들은 통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꿈꾸는 자들은 이동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흑암(어둠)”은 꿈꾸는 자들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비취는 “빛”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행동가들, 그리고 그 당신의 제자들이 이제, 꿈꾸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4:19)
우리는 세상에서 비치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빛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4:23~24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픈 것을 고치셨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것”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빛이 되라고 어둠 속에 빛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지금도 부르십니다.
새해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바다로 향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우리가 빛으로 떠오르길 소망하고 우리가 그 빛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