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98번 어버이주일

(인도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회중)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인도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회중)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1:8-9)
(인도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회중)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인도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회중)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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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말씀 _ 요한복음 14장 15~21절



1.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에 담긴 예수님의 본심

15절이 어떻게 시작이 됩니까? 여러분,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이라고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래서 다시 얘기하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 말씀을 들으셨을 때 가슴이 어떠세요? 마음이 어떠세요?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사실 오늘 있는 말씀인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21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마치 데자뷔처럼 비슷한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구나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그러한 감정과 생각을 느끼셨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17절에 있는 말씀,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라는 구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이라고 하는 이 전제 조건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얘기하셨는데, 이게 정말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질문인가요?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게 맞니?"라고 얘기를 하면, 이 질문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가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건지, 의심이 된다는 건지, 아니면 절대로 네가 날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건지 당황하게 되는데요.

17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렇죠?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해요.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안다고 얘기했잖아요. 그 안다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으면 우리는 지난주, 지지난주 말씀이 떠올라야 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그렇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다른 목자의 음성은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에 듣지 않는다고 말씀을 우리가 나눈 바 있습니다.

그럼 17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시작하신 것인지, 아니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지 정말 모르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 같으세요?

제 생각엔 알고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이라고 했을 때,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셔서 그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니라, 17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우리는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의 마음은 "아, 내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아"라고 하는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사람이고,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전제 조건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의심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면 "야, 내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아." 여러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하는 걸 알아"라고 하는 시작에서 말씀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을 보는 두 가지 버전과 세 단어

이 말씀의 구절을 이렇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잘 한번 들어 봐 보십시오. 왜냐하면 두 가지의 버전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훨씬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한번 생각을 해 보시면

  • 첫 번째, "만약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그때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들리셨어요? 이게 첫 번째 버전입니다.
  • 두 번째, "만약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그때 너희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고 나는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아주 심플하게 정리하면 첫 번째는 '사랑하고 지키면 구할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하면 지킬 것이고 구할 것이다'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더 마음에 와닿으세요? 두 번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같은 얘기인데 '사랑하고 지키면'과 '사랑하면 지킬 것'이 마치 조건절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이것을 '사랑하고 지키면'이라고 다시 해석한 브라운이라고 하는 신학자는요, '사랑하면 지킬 것이다'라는 조건절보다는 사랑과 지키는 것이 분리할 수 없어서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고' 이렇게 두 개가 동시에 있다고 하는 해법을 우리에게 또 제시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세 개의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지키다, 세 번째 구할 것이다. 그럼 조직이 좀 나오시나요? 사랑, 그다음에 지키고, 구할 것이다가 있습니다.


3. 첫 번째 단어: 사랑 (아가페, 헤세드, 아하브)

여기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의 헬라어가 무엇입니까? '아가페', 그렇죠. 아가페라는 헬라어는 굉장히 많이 들어보시지 않았어요? 아가페 출판사도 있고 아가페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듣지 않습니까? 헬라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사실 동사는 아가판테라고 하는데요, 아가파오가 명사이고요, 우리가 흔히 얘기해서 아가페라고 얘기하면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사랑이 뭘까요? 막 가슴이 뛰어서, 요즘에 제가 변우석에 대한 사랑을 요즘 계속 고백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랑이 아니고 이 아가페의 사랑은 되게 신기합니다. 감정이 없을 때라도 사랑을 베풀거나 사랑을 펼치는 것, 그것이 아가페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렇게 얘기를 하죠. 무조건적인 사랑.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조건 없이 무조건적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사실 여기에서 무조건적인 아가페라고 했을 때는 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주는 사랑의 명확한 의미는, 헬라어로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사랑을 베풀고 펼치는 행위를 강조한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그러면 이 아가페가 히브리어로는 어떤 단어일까요? '헤세드'라고 부릅니다. 헤세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헤세드의 다른 단어는 '신실하다'입니다. 신실하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 반드시 지킨다, 처음과 끝이 일치한다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헤세드이고 그 헤세드가 은혜이기도 한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마침내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사랑을 우리는 또 뭐라고 그래요? 은혜라고 합니다. 내가 뭘 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무엇인가가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받는 모든 것, 선물같이 받는 것이 은혜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사랑을 우리는 은혜로 받습니다. 내가 믿음 생활을 막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주시는 거, 그걸 뭐라고 그래요?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헤세드가 사랑입니다.

또 하나의 사랑이라고 하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아하브'입니다. 이 아하브라는 단어는 신명기 6장 5절에 있는 사랑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서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럼 여기서 사랑은 뭡니까? 마음과 성품을 다해서, 매우 선택적인, 그러니까 올인하는 거죠. 그리고 열정을 다하는 사랑이 아하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 헤세드와 아하브의 사랑이 헬라어로 얘기하면 아가페가 됩니다. 아가페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에요. 그래서 상대방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고귀한 의지를 담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얘기하면 그 사람을 좋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은 뭐예요? 감정이 움직이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것과 시은이가 좋아하는 게 다르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빨간색에 막 반응해야 되는데, 원수를 보면서 빨간색에 반응하는 것처럼 좋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을 때 이 사랑은 무엇입니까? 곧 선한 행동을 하라, 즉 선한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책임 있는 응답이 성경적인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원수라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상대 원수를 위해서라도 그가 유익한 행동을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사랑은, 오늘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등장한 예수님의 사랑은 뭡니까? 설명을 좀 해 볼까요? 요한복음 14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사랑, 18절에 아, 이러한 사랑의 이미지를 그리죠.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고요, 그 신비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어디에서 등장합니까? 여러분 다 다를 수 있는데요, 저는 18절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처음에 저는 예수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승천을 앞두고 있잖아요. 하늘나라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의 부재, 예수님의 부재를 예고하고 계시는 거죠. "내가 이 땅에 없어, 그럼 너희가 혼자 있을 것 같아." 그런데 그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너희에게 오리라."

너희에게 오리라, 여러분 재밌는 단어 들어보셨어요? '재림'. 재림이라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휴, 무서우시죠? 종말이 있고 예수님이 오시는데 심판의 날, 막 이렇게 생각을 하실 수가 있는데, 오늘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한 단어로 얘기하면 뭡니까? 재림이에요. 그러니까 재림 예수를 얘기했을 때 심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요한복음 14장 18절에 있는 예수님이 다시 온다는 재림은? 사랑입니다. 혼자 두지 않고 너희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고 "내가 다시 너에게 올게"라고 하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그 재림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무서운 단어가 되었는지 참 안타깝게 생각이 됩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함께할 것이라고 알려주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희망으로 그렇게 함께하는 인생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하는 재림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다시 오신다는 사랑의 약속을 통해, 그 약속을 마침내 이루시는 예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홀로 두지 않으시고요, 여러분 말입니다, 예수님 또한 그렇습니다. 너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려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두 번째 단어: 지키다 (테레오, 샤마르, 순종)

그런데 그 다음에 등장하는 단어가 뭡니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요, 그 사랑 다음에 마치 조건처럼 등장하는, 사랑을 한다면 돕는 단어가 뭡니까? "지키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어를 봅니다. 여러분, 이 지킨다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테레오'입니다. 테레오. 테레오라고 하는 이 단어는 감시하다, 경계하다, 유지하다, 보유하다, 보존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손상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지키는 겁니다. 버리지도 않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든든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이 테레오라고 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지키다의 다른 말, 명사라고 얘기를 해야 되네요, 두 글자 단어 떠오르는 단어 있지 않습니까? 지키다의 다른 단어는 '순종'입니다. 지키라고 하는 단어를 우리는 순종이라고 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킨다고 하는 이 단어는 단순히 법규를 수호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두는 겁니다. 지켰다 안 지켰다 이것이 아니라요, 마음에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흔히 이렇게 교회를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얘기했을 때, 주일날 나왔어도 마음의 중심이 없으면 지킨 걸까요 안 지킨 걸까요? 안 지켰다라고 하는 결론에 해당하는 단어가 바로 이 지키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테레오라고 하는 이 단어를 다시 살펴보면, 지키다는 헬라어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히브리어로는 '샤마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지키다, 샤마르는 울타리를 지키고 파수하고 보존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훼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훨씬 더 큽니다. 그런데 그 샤마르를 명사형으로 얘기하면 '샤마', 순종이 됩니다. 그런데 이 순종에 되게 놀라운 단어가 있습니다. 같은 의미인데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순종이라고 번역하지만 샤마라고 하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듣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지키는 것과 듣는 것은 같은 겁니다. 말씀을 들으라, 그래서 샤마르 단어를 하면 우리의 말씀을 '쉐마'라고 하거든요, 그렇죠? 율법과 말씀을 쉐마라고 합니다. 그 쉐마가 다른 말로 하면 앞에서 얘기한 샤마, 순종이 된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듣는 것이 순종이라고 하는 히브리적인 사고 체계를 여러분이 좀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듣는 겁니다. 그러면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들었으니까 당연히 어떻게 해요? 그렇죠, 순종하는 거는 당연한 겁니다. 듣고 행하는 것은 그래서 이 순종과 듣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이 쉐마, 샤마르, 샤마, 순종이라고 하는 지킨다고 하는 이 히브리어 단어가 헬라어에서 등장해서 오늘의 말씀인 지키다, '테레오'가 됩니다.

그러면 지키는 것, 그것이 짐처럼 무겁게 느껴지십니까?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마음이십니까? 테레오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 아주 소중한 유산이 됩니다. 짐을 버겁게 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유산을 받아서, 그 소중한 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지키고 충만한 상태로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바로 지키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지키다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반드시 14장과 15장에 이 단어와 함께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랑하니까 지키는 것이 짐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하니까요, 아빠가 되는 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엄마가 되는 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되는 것이 짐이 되지 않으려면 진심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사랑해야 되겠죠.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5절 앞뒤가 바뀌어서 나옵니다. 사랑하면 지킬 것이고 지키면 사랑합니다.

그럼 다시 찾아볼까요? 요한복음 14장 15절을 읽었습니다, 그렇죠? 21절이 끝이 납니다. 14장 15절과 21절을 함께 얘기하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그리고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지키면 사랑하는 거죠. 15절에는 사랑하면 지키는 거고, 21절에는 지키면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관계, 순종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아가페와 테레오의 순종과 사랑의 관계를 우리가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는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 세 번째 단어: 구할 것이다 (선물: 보혜사 성령)

그렇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면, 그 다음에 오히려 지키면" 이렇게 되네요. 앞에 "사랑하면 지키고 그 다음에 구할 것이다"라고 그랬잖아요. 무엇을 구할까요? 무엇을 원할까요, 구할까요? 바라는 게 뭐니? 이렇게 되는 거죠. 야, 지키면 어떻게 보면 구할 것이다라고 얘기를 했잖아요, 줄 것이다. "너는 선물을 뭘 받고 싶어?"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엄마 말을 잘 들었어,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 말을 잘 들었어, 그러면 뭘 받고 싶니 이러는데 구한다는 게 그런 의미잖아요. 그럼 예수님은 정말 좋은 선물로 무엇을 구할까요?

답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아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구하는 거 그게 뭘까요? 자꾸 반짝이는 거 좋습니다, 그것도 반드시 하고요, 그거보다 더 선해야 되는 거, 예수님께서 우리기를 위해서 구하시는 거 그것이 무엇입니까? 답을 찾으셨나요? 구하면... 네, 16절이죠, 그렇죠.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라고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사랑하고 지키고, 지키면 사랑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보혜사입니다, 성령. 그것을 구하신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 사랑하고 지키고, 지키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받는 거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해 주셨고, 그 성령을 우리가 이미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6. 성령(보혜사, 파라클레토스)에 대한 이해와 신비

그러니까 성령은 어떻게 이 의미를 찾아보셔야 되냐면, 성령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셨잖아요. 성령이 뭔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이 무엇일까요? 성령을 잘 모르겠어요라고 얘기를 했는데, 오늘 있는 말씀의 문장대로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령은 앞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얘기했잖아요. 예수님의 사랑은 왜 너희를 고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요? "너희에게 내가 나타내리라." 그것이 오늘 읽은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설명하시는 이 보혜사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제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데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내가 너희에게 다시 나타낼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그것이 성령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너희는 알게 될 것이고, 이미 안다고 말씀하신 것이 성령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전혀 모를 수가 없는 겁니다. 왜요? 예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나타나시겠다고 하는 그 말씀을 이루신 것이 무엇이냐, 성령입니다.

그 성령을 우리는 다시 어떻게 설명하냐면 보혜사,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파라클레토스. '파라'는 곁에라고 하는 뜻입니다. '칼레오'는 부름을 받았다고 얘기하는데요, 이런 의미입니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 이 파라클레토스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변호사라는 이 단어가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라틴어에서 영어로 되는 과정에서 보면, 이 변호사가 파라클레토스 보혜사인데 무슨 뜻을 가졌냐 하면 '옹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위로자 되시고, 보호자 되시는 그것이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우리의 곁에서, 아니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는 그 성령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증표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증표,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그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 성령이잖아요.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무엇이 생깁니까? 아홉 가지 열매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바울의 사상으로 이렇게 연결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과 재림에 대한 세상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해와 편견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가 재림과 성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요한복음에 있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나타나리라"고 하는 약속이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성령 보혜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약속하신 그것을 이루시는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진리와 함께 살아감으로 이제 성령을 더욱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아는 사람들에게 성령은 일하십니다. 마치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고 우리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은혜를 저와 여러분이 삶을 통해서 이루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1절에 있는 말씀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계명을 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유산으로 훼손되지 않고 그것을 정말 지키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 아름답고 따뜻하다고 해야 되나요, 굉장히 넘치는 마음을 가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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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