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113번 자연과 환경

(인도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회중)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상)
(인도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회중)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인도자)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회중)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8:19)
(인도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회중)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인도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회중)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인도자)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1-23)
(회중)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다같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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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78장 참 아름다워라

말씀 _ 마태복음 9장 35~10장 8절 보내주소서 하라

오늘 말씀을 보면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보내 주소서’까지만 해야 할까, 아니면 ‘보내 주소서 하라’까지 다 해야 할까? 여러분, 여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보내 주소서’라고 하면 단순한 간구나 청원, 혹은 요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가고 싶으니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겠지, 내가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 보내 주시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 9장 38절을 깊이 보면, ‘보내 주소서 하라’는 말씀에는 훨씬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간구가 아니라 훨씬 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겠다는 결단은 이미 확고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해 주시고 나아갈 힘을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가는 그 길을 단호하고 힘있게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권능 있는 간구입니다. 저는 이러한 묵상을 바탕으로 ‘보내 주소서 하라’는 의미를 살려 오늘의 제목을 잡았습니다.

사실 저의 고민은 마태복음 9장 35절부터 10장에 이르는 긴 본문의 맥락을 보며 시작되었습니다. 이 긴 스토리가 도대체 왜 시작되었을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답은 마태복음 9장 36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여기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도시와 마을마다 말씀을 전하고 행하셨을 때, 제자들과 수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늘 어떤 일의 목적성을 따지곤 합니다. 제가 승리 언니에게 “공부를 도대체 왜 하니? 왜 교회에 나와 있는 거니?”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은 왜 그 일들을 하셨을까요? 왜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셨으며, 능력을 주시고 성령을 약속하셨을까요? 그 모든 시작은 마태복음 9장 36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만나러 가셨을 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안고 우셨던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신학은 잘 몰라도 기독교인으로서 제 마음에 가장 뜨겁게 남아있는 문장입니다. 세상의 여러 종교를 보면 늘 미소 짓고 있는 신의 모습이 많지만, 저는 우리 인간의 고통 앞에 함께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에는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가? 라는 의문의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하늘과 산, 자연을 바라보는데 이 세계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믿어졌습니다. 요즘 과학자들도 이 우주(코스모스)가 너무나 정교해서 창조주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고, 또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단순히 약한 사람을 향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근원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를 보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교의 용어처럼 인생은 고생(고, 苦)이고, 모든 사람은 살아가며 기진맥진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십니까? 내 삶이 고생스럽고 기진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생과 기진하는 순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 크게 감싸 안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35절에서 엄청난 사건들을 행하십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안타깝게도 ‘약한 것이 악하게 되는 악순환’을 자주 목격합니다. 가난하고, 몸이 아프고, 차별과 혐오와 배제를 당하는 그 약함 속에서 상처가 쌓여 악이 태어납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질병과 가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 같은 모든 약한 것들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역의 현장 속에 12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원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 중에 속해 있던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 민족의 원수처럼 여겨지며 인정받지 못했던 세리 마태까지도 모두 연약한 무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제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입어 이미 주님께 배웠고,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삶의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침 받은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리 역시 주님의 제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믿고 내 안의 연약함이 고침 받았음을 믿으십니까? 아멘. 이것이 제자의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1절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당신이 하셨던 사역과 똑같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수여하십니다. 이 권능은 훗날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권능이 주어졌음을 믿고 고백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원래 평범하고 연약했기에 사역의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배반했고, 도마는 의심했으며,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제자들은 내 힘이 아닌 주님의 권능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희망과 안녕의 원천이 되며, 하늘의 위로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지기 시작한 이 권능을 삶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5절부터 8절을 통해 명확한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첫째, 권능을 받은 우리가 유지하려면 이런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방인의 길들로 가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먼저 가라. 지혜롭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며 예수님께서 보내신 곳에 가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세상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성공 법칙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담대히 선포할 때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셋째, 병든 사람, 죽은 사람, 영원히 죽은 사람, 그렇죠? 나병환자처럼 소외되고 외면되고 우리가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권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귀신들, 그러니까 혼란한 사람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 죽은 사람, 나병환자,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주신 권능이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와 우리와 함께함을 고백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넷째,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대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열매. 우리가 정말 부족함이 없는 삶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정말 고귀하고 풍족하고 풍요로운, 부족함이 없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채우시고 넘치도록 흘러넘치도록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주신 것이기에, 대가 없이 아낌없이 나누어 줄 때 하나님의 풍성함이 우리 삶에 마르지 않고 넘쳐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 제자들의 이름이 성경에 하나하나 나열되었던 것처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과 주님의 사역 위에 구체적으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비록 평범하고 연약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고치셨고 또 세상을 치유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평생 주님 안에서 단호하고 힘있게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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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