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4번 히브리서 11장

(인도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회중)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회중)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회중)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이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회중)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인도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회중)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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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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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말씀 _ 마태복음 15장 (10~20), 21~28절

마태복음 15장 1절부터 28절에 등장하는 두 개의 핵심 단어, ‘아르토스(artos)’와 ‘부스러기(psichion)’를 통해 정결과 참된 믿음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르토스(artos): 생명의 본질이자 영적 양식
오늘 본문은 정결 예법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됩니다. 당대 종교 지도자들은 묻습니다. “빵을 먹을 때 꼭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손을 씻고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으면 부정하다며 제자들을 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여기서 ‘빵’ 혹은 ‘떡’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헬라어로 ‘아르토스(ἄρτος)’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의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등장하는 이 단어는 단순히 빵이나 떡, 케이크 같은 특정 음식을 넘어,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본질적인 양식’이자 ‘음식 전체’를 뜻합니다.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근본적인 필수재가 바로 아르토스입니다.
마태복음의 맥락에서 이 아르토스는 단지 육신의 빵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자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양식, 곧 생명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묻는 진정한 주제는 무엇입니까? 겉으로 손을 씻었느냐 안 씻었느냐를 두고 타인을 정죄하는 종교적 태도인가, 아니면 내 영혼을 살릴 생명의 양식인 아르토스를 진심으로 감사하고 간절히 구하는 태도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침 먹을 거야?” 물으면 “배불러, 안 먹어”라고 쉽게 거절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생명의 양식인 아르토스가 가진 본질적 가치가 상실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의 안씻은 손을 지적하러 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이미 배가 불렀고 여유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빵의 근본적인 목적과 생명의 가치를 망각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율법의 잣대로 타인을 정죄하는 데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르토스에 대한 진정한 간구와 배고픔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부르짖음과 예수님의 대답
그러나 본문 21절 이하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 간절히 구합니다.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려 고통받는 상황에서, 여인은 제자들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외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자들은 소리를 지르는 여인을 시끄럽고 부끄럽게 여겨 “저 여자를 내보내소서”라고 요청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제자들에게 대답하시는 대신,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 15:24)

예수님의 이 대답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냉정하며, 당대의 대의명분이나 장로들의 전통과도 맞아떨어지는 명확한 거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말씀마저 놓치지 않고 듣고는 즉시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절하며 간청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더욱 가혹해 보이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artos)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 15:26)

이 말씀은 자녀를 위한 생명의 떡, 곧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기적을 이방인인 너에게 줄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자신이 부정당하고 수치스러울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27절에서 여인이 보여준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주여 올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 15:27)

여인은 자신이 개와 같이 아무런 자격이 없는 존재임을 그대로 인정합니다(“올소이다”). 그리고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즉 ‘프시히온(ψιχίον)’조차도 아르토스(생명의 양식)임을 알고 “그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제게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풍성하여 그 작은 부스러기 하나만으로도 딸을 살리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 15:28)

참된 정결과 ‘안에서 나오는 큰 믿음’
바로 앞 장(마 14장)에서 수제자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에 빠져 침몰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반면, 성경 한 구절 읽어본 적 없고, 성전에 가본 적도 없으며, 저주받은 이방 땅 두로와 시돈 출신의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Megale sou he pistis)”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이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외적인 율법 준수나 종교적 경건이 아니었습니다. 믿음과 정결은 눈에 보이는 외적 행위나 출신 성분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어적 관점에서 믿음의 본질을 살펴보면 여인이 보여준 내면의 믿음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 / ‘아만(אָמַן)’: ‘견고하다’, ‘진실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어떠한 거절과 시련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건히 붙드는 태도를 뜻합니다.
  •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 / ‘피스테우오(πιστεύω)’: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신뢰(Trust), 의지(Reliance),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전인적 항복(Surrender)을 의미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1. 신뢰: 예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신뢰하며 시험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2. 의지: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3. 항복: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는 자격 박탈의 선언 앞에서도 “주여 올소이다”라며 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자비만을 구했습니다.

결론: 아르토스에 대한 간절함을 회복하라
많은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 지평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 열방으로 확장되는 중요한 선교적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오늘 정결과 믿음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정결함은 손을 씻는 외적 행위에 있지 않고, 마음과 생각과 뜻이 깨끗하고 거룩한 내면에 있습니다. 참된 믿음 또한 우리의 겉모습이나 종교적 경력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참된 정결과 믿음이 새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아르토스(생명의 양식)에 대한 간절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감지하고 구했던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의 자비와 구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엎드리는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미 주께서 주신 믿음이 있습니다. 영적 배부름과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생명의 아르토스를 향한 간절한 고백으로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림으로써 “네 믿음이 크도다” 인정받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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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