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9장 찬양하는 소리 있어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0번 고린도후서 4장
(인도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회중)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인도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회중)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인도자)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회중)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인도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회중)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인도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회중)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7-11)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 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말씀 _ 마태복음 16장 21~28절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제목: 반석 위에 세워진 고난의 공동체: 십자가를 넘어 참 생명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마 15장)와 베드로의 고백(마 16:13-20)을 통해, 참된 믿음(피스티스, Pistis)이란 나의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은혜로 주어지는 생명의 양식(아르토스)을 붙드는 전인적 항복임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의 관점에서 이 고백은 바리새인과 같은 외적 정결 예법이나 혈통, 지적 탁월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안으로부터 깨닫게 하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마 16:21-28)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고백을 드렸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말씀—를 듣자마자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2)
베드로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여전히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 즉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며 거칠게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본성, 즉 하나님의 시선이 아닌 인간의 자아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phroneo)를 교정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조건부 요구를 던지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질문: 왜 누군가는 고난과 박해를 무릅쓰고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초대교회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신자들은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며 심지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공동체에 대체 왜 사람들은 스스로 들어가고자 했을까요?
마태복음은 그 이유를, 지난주 우리가 나누었던 '참된 믿음의 고백(피스티스)'과 본문 25~27절의 세 가지 진리를 통해 선명하게 대답해 줍니다.
1. 진정한 자아(True Self, 목숨)를 찾기 위함입니다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세상은 내 삶의 주권을 내가 쥐고, 자아를 확장하며, 타인을 누르고 세속적 권력을 얻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자기중심적 삶의 끝은 허무와 영적 파멸입니다.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자기 부인'은 나라는 존재의 소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스스로 왕 노릇 하려는 죄로 오염된 가짜 자아(False Self)를 비워내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안에서 창조된 '참된 나(True Self)'를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참된 고백의 반석 위에 서는 순간, 우리는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진짜 생명'을 얻게 됩니다.
2.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의 정치·종교 엘리트들이 줄 수 있는 유익은 한시적이고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진 공동체'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으로 사람들을 매어두고 정죄하는 곳이 아니라, 가나안 여인과 같은 이방인도, 연약하여 넘어지는 베드로도 은혜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의 압도적 가치와 생명의 '아르토스(Artos)'에 매료되었기에, 세상이 주는 고난을 기꺼이 뒤로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3. 십자가 너머의 최종적 승리와 영광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는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는 부활의 선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회가 지는 십자가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재림과 최종적 승리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져오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불의를 폭로하고(Carter), 세상의 평가와 전혀 다른 하나님의 공의로 각 사람에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박해와 감옥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십자가 너머의 부활과 승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십자가의 고백으로 세상에 문을 열어주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누구든지 ~하려거든"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의지(will)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가 누구인지 신학적으로 아는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 은혜로 알게 되신 주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내 삶을 온전히 던지는 전인적 신뢰(피스티스),
- 그리고 그 고백을 바탕으로 '인간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의지적 따름이 통합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결코 비참한 고행이 아닙니다. 가짜 나를 버리고 참된 나를 찾는 길이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며,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내 자격을 내려놓고 주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진실한 고백이 우리 내면에서 날마다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올바른 고백의 반석 위에 세워진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박해와 흔들림 속에서도 담대히 천국 문을 열어주고, 은혜의 아르토스를 나누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