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73번 이사야 65장

(인도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회중)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인도자)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회중)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인도자)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회중)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인도자)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7-19)
(회중)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인도자)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회중)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5)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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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82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말씀 _ 마태복음 21장 33~46절 / 그 나라의 열매들을 맺는 자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는 지난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오신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 간의 ‘권위 논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라며 ‘두 아들의 비유’를 던지셨습니다. 그 비유는 "아니오"라고 했다가도 마음을 바꾸어(메타멜로마이) 밭으로 간 세리와 창녀들처럼, 성전 지도자들에게도 아직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기회와 초대가 남아있음을 알려주신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초대에 응하지 않고 끝내 하늘의 권위를 거절한 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임하게 되는지를 선포하시는 엄중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이 비유는 성전으로 들어오신 예수께서 행하신 일단의 사건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성전 입성 직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21:22)라는 저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개인의 기복적 소원 성취로 읽곤 합니다. 그러나 성전 정화와 비유의 맥락에서 볼 때, 이 말씀은 ‘열매 없는 옛 성전 체제의 시대가 끝나고, 오직 예수를 주춧돌 삼아 믿음으로 기도하며 참된 열매를 맺는 새로운 신앙의 시대가 열렸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잎사귀만 무성한 종교적 외형이나 기득권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제 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1. 마태가 전하는 비유의 치밀한 전개

비유는 33절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우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1:33)

여기서 예수님은 아주 세심하고 착한 포도원 주인의 모습을 그리십니다. 33절에는 무려 7개의 동사가 등장하는데, 비유를 소개하는 1개의 동사를 제외한 나머지 6개의 동사는 모두 주인이 농부들을 위해 행한 준비를 나타냅니다. 묘목을 심고, 동물의 침입을 막을 울타리를 치고, 포도주 틀을 파고, 파수꾼의 망대까지 세웠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이 소출을 내는 데 필요한 모든 환경과 안전을 완벽하게 제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소명을 따라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은혜와 환경,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생각했지만, 농부들은 아들마저 상속권을 탐하여 성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여기서 마태복음은 마가복음(12:8)과 비교해 볼 때 뜻밖의 순서 교체를 보여줍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농부들이 아들을 ‘포도원 안에서 죽인 뒤 밖으로 내던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1장 39절은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먼저 끌어낸 후 죽였다’고 순서를 뒤바꿉니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부합하는 마태의 신학적 묘사입니다. 즉, 성전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아들을 배척하고 성 밖으로 몰아낼 것임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은 그토록 '열매'를 강조하시는가? (원어적 성찰)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토록 강력하게 ‘열매’를 요구하시는 걸까요? 구약과 신약의 원어를 비교해 보면 예수님의 강조점이 명확해집니다.
구약 히브리어로 열매는 ‘프리(פְּרִי)’입니다. 이 단어는 ‘씨를 맺다, 번성하다’라는 뜻의 동사 *파라(פָּרָה)*에서 유래했습니다. 구약에서 포도원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데(이사야 5장), 하나님이 기대하신 ‘프리’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라는 삶의 열매였습니다.
신약 헬라어에서 열매는 ‘카르포스(карπός)’입니다. 이 단어는 ‘손으로 쥐다, 거두어들이다’라는 어원을 지닙니다. 즉, 카르포스는 말이나 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쥐어질 만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결과물’을 뜻합니다.
우리가 앞서 나누었듯, 참된 순종—곧 하나님의 음성 아래 자신을 낮추어 듣는 ‘후파쿠오(ὑπακούω)’—는 관념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손에 잡히는 삶의 소출인 ‘카르포스(열매)’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순종과 열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순종 없는 열매는 거짓이며, 열매 없는 순종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5장의 예수님 말씀과 깊이 연결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농부 비유의 포도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포도원의 주인인 줄 착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열매를 만들어내려 하거나 주인의 소출을 독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참된 포도나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우리는 그분께 붙어있는 가지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권위이신 예수님께 순종하여 접붙여져 있을 때,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함, 신실, 온유, 절제)는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바치기를 거부한 종교 지도자들은 결국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생명의 줄기에서 잘려 나간 것입니다.

3.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권위와 심판)

예수님은 시편 118편을 인용하시며 비유의 결론을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1:42-43)

여기서 ‘모퉁이의 머릿돌’은 헬라어로 ‘케파레 고니아스(κεφαλή\ γωνίας)’입니다.

  • *케파레(κεφαλή)*는 ‘머리, 으뜸, 다스리는 권위’를 뜻하고,
  • *고니아스(γωνία)*는 ‘모퉁이, 주춧돌’을 뜻합니다.

1세기 건축 방식에서 모퉁잇돌은 두 가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첫째, 건물 전체의 기준점(Baseline)이 되어 벽의 방향과 수평을 결정했습니다.둘째, 서로 다른 두 벽면을 하나로 엮어 건물 전체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지탱점(Anchor point)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의 건축자들, 즉 신학적·정치적 전문성을 자부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라는 돌을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과 성전 체제라는 설계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 돌을 ‘쓸모없다’며 성 밖으로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건축자들이 십자가에 버린 그 돌을 가져다가,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성전의 가장 으뜸이 되는 기준점이자 주춧돌(케파레 고니아스)로 삼으셨습니다!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되었다”는 선포는 두 가지 엄중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인간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의 반전입니다. 세상이 버리고 무시한 예수를 하나님은 역사의 가장 중심에 놓으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제거하려 했던 예수, 살아있는 돌이자 성 밖에서 버려진 돌이 마침내 부활하셔서 만유를 다스리시고, 하늘의 권위를 거절한 자들을 엄히 심판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둘째, 기준의 전환입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은 종교적 자격증이나 성전의 기득권이 아니라, ‘이 모퉁잇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렬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버린 돌은, 결국 부활하여 만유를 심판하시는 날에 그들을 부수는 돌이 될 것입니다.

결론: 내 삶을 떠받치는 진짜 머릿돌은 누구인가?

45절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 줄 깨달았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분노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하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오늘 비유는 은혜로 포도원을 위탁받은 오늘 우리를 향해 선포됩니다. 마태는 41절에서 새롭게 부름받은 우리 역시 과거의 농부들과 똑같이 “제 때에 열매를 주인에게 바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 서서 우리는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 나는 포도원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 아래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나는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순종의 열매(카르포스)를 맺고 있으며, 주인에게 드릴 기쁨의 소출을 날마다 꿈꾸고 사모하고 있는가?
  • 대제사장들이 버리려 했던 예수님—그러나 부활하셔서 만유를 다스리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내 삶과 내 가정을 굳건히 떠받치고 다스리시는 진짜 모퉁잇돌이자 머릿돌이신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은혜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순종하며 맺어가는 삶의 소출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이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시어 만유의 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그분만을 내 삶과 가정의 머릿돌로 모시고,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져, 제 때에 하나님께 기쁨의 열매를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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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