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 교독 _ 교독문 121번 주현절(1)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회중)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인도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회중)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인도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회중)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회중)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인도자)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회중)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인도자)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회중)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시36:5-10)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218장 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서

말씀 _ 마태복음 3장 13~17절, “그리스도의 첫 번째 유혹/시험”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말씀은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완성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3장 21~22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들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내려 오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는 너를 매우 좋아한다.”

이와 달리 마가복음 1장 9~11절은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개의 말씀이 마태복음으로 하나가 되고 여기에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가 추가됩니다. 바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본문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은 본문은 두 개의 주제로 생각되기 쉬운 본문입니다. “세례” “하나님이 사랑하는 내 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태는 이 두 개의 주제 사이에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과 의를 이루는 것

이 본문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유혹/시험”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시험은 마태복음 4장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광야에서의 시험이지요. 성령에 이끌리어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셨고 거기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금식하신 후 시험하는 자(사탄)가 등장합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라.” 이 첫 번째 시험을 포함한 세 번의 시험은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그보다 앞선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이를 말리면서 제가, 오히려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제게 오시다니요”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놀란 것을 떠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겠다는 것을 말립니다. 세례요한의 반응은 매우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회개가 필요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 그는 성령의 선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의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설명합니다. 세례 요한, 자신은 물로 성령을 주지만 그러나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실 것이고 자신은 그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도 없으니 그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있을까요? 무엇이든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왜곡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상황이 바로 “항상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깨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매번, 매일 일어나는 그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새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해와 동일한 날짜인 오늘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래서 깨어 있으되 “항상”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항상 깨어 있어,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세례요한의 당연한 생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왜곡으로 그 순간, “시험”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받으려는 예수님을 막음으로써,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요구하는 그 일을 하지 말라고 유혹하게 된 것이지요.

요한은 의도치 않게 예수님에게 지금 그의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심판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고, 요한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세례 직후의 발생한 악마의 유혹과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4:1-11). 이 시험은 예수님에게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지금 그의 힘을 사용하라는 시험이고, 자기를 비우지 말고, 결국은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을 피하라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3장 13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으로 찾아오셨다.”

쉬운 말로 일부러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있는 요단강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단지 세례뿐이었을까요?

세례는 예수님께서 죄인인 인간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그림의 일부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의 용서를 위해 세례를 받으십니다. 거룩하신 분이 거룩하지 않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교제합니다. 불멸의 존재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은 그 자신을 비우는 것의 일부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참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세례”는 “비움”으로 하나님의 뜻이 시작되고 있으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방법)에 순종의 상징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은 이렇게 시작되어 이후에 일어날 시험의 승리를 예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요한을 통한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은 우리와 우리들의 교회에 특별히 “필요를 채우는 것”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를 찾아서, 그것을 만족시키기”위해 목표는 삼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필요를 채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필요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하는 것” 위한 획일적인 규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들이 너무 교만해졌기 때문에, 그것은 좀 더 겸손해지는 것을 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에 그것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누가복음10:25-37), 가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을 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리아처럼 가만히 앉아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공부에 잘 참석해서 배우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이 모든 훌륭하고 신앙적인 일들로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이 때에 어디로 인도하시는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주 예배를 통해 알게 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