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송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교독문 121번 주현절(1)
(인도자)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회중)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인도자)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회중)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인도자)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회중)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인도자)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회중)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인도자)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회중)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인도자)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회중)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공의를 베푸소서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406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여호수아 2장 1~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새해가 시작되고 차가운 겨울이 살을 파고드는 듯합니다. 이 때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온기이겠지요.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아주머니 두분이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추우시겠냐?고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때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말 뿐인 것 같은 우리의 모습에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실천하기 위해선 그런 마음과 말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서로를 위한 따스한 말과 시선이 분명 무엇인가 결정할 때가 된다면 우리로 옳은 결정을 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먼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2장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싯딤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싯딤[Shittim]은 ‘아카시아 나무’란 뜻으로 요단 동쪽 약 12㎞ 지점의 모압 땅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갈 곳은 분명해졌습니다. 약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요단강 동편에 장막을 치고 모세는 이곳 싯딤에서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이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선포하였지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최후의 장막을 싯딤에 치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먹을 것을 준비하십시오. 지금부터 3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차지하라고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들어갈 것입니다.” (1:11)
그리고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선택합니다.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살펴보아라.”
여리고[Jericho]는 ‘달의 성’, ‘종려나무의 성’, ‘향기의 성’이란 뜻이 있습니다.


요단강 서쪽으로 약 8㎞, 사해 북쪽으로 약 11㎞, 그리고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약 23㎞ 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최고의 도시, 여리고는 지중해 연안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자, 요단강 서쪽의 넓고 비옥한 평원을 지키기 위한 경제적, 전략적 가치 때문에 매우 오래 전부터 이곳에 성(wall)이 있었습니다. 또한 열대성 기후 지역 내에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이기도 한 여리고는 고대 최고의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이 여리고를 이스라엘은 반드시 지나가야만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gate way), 여리고를 살펴보기 위해서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라합의 집
두 정탐꾼들은 한 집에 들어 갔습니다. 그 집이 라합의 집입니다.
라합[Rahab]은 ‘넓은’, ‘광활한’이란 뜻으로 여리고에 살던 우리나라에선 기생이라고 부르던 여인이었습니다. 가나안을 탐지하러 온 두 명의 정탐꾼들의 눈에 성벽 위 라합의 집이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라합의 집을 성서는 창녀의 집으로, 다시 여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위부터 아래까지, 소문과 이야기들이 머무는 곳이 라합의 집입니다. 게다가 성벽 위에 있는 라합의 집은 여리고와 가나안을 두루두루 살펴보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 라합의 집에 두 정탐꾼들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두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여리고의 어떤 사람이 보았습니다. 그리곤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그러자 즉시 왕은 라합의 집에 사람들 보내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두 정탐꾼들의 모습이 문제였습니다. 싯딤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을 여리고는 계속 살펴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경계하고 있었겠지요. 여리고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으니 두 명의 사나이들은 분명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이 두명의 정탐꾼들을 라합도 알아보았습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9)
라합은 정탐꾼들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자 즉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다쳐올 위기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라합은 결심하였습니다. ‘이들을 도울 것이다.’ 그리고 즉시 두 정탐꾼들을 자신의 집 지붕에 숨기고 군사들이 찾아오자 군사들에게 그들이 왔었지만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고 어두워지고 성문이 닫힐 때 쯤 그들이 나갔으니 서둘러 쫓아가면 찾을 수 있을거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라합의 신분과 직업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서에 굳이 창녀의 집이라는 표현은 당시 문화 안에서 창녀의 집이 당연하게 여겨진 것도 있겠지만 라합의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라합은 성서의 표현 그대로 창녀였습니다. ‘창녀’라는 이 한 단어에서 우리는 라합이 처한 현실을, 환경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그런 환경에 쳐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너무도 놀라운 부분이 바로, 이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은 마침내 여리고를 정복하게 되고 라합이라는 그녀의 이름이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기록된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태복음1:1)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태복음1:5)
마태복음 1장 5절에 기록된 라합이 오늘의 말씀 여호수아서의 라합입니다. 그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진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어디서 살고 있느냐? 어디서 태어났느냐? 부모가 누구이냐?” 결국 환경에 따라 삶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녀의 환경이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처참한 현실과 환경이 라합이 처한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과 배우지 못한 현실이 그녀를 그런 환경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환경이 그녀 자신을 구원하고 가족들을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그녀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었기에 라합은 두 정탐꾼을을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녀는 어떻게 정탐꾼들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여호수아 2장 10절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이 “들음” 언제나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은 늘 “들으라”로 시작되곤 합니다. 여호와께서도 친히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이런 의미에서 라합의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 말을 살펴보면 라합은 당시의 상황을 들어 알고 있었다는 말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라합은 여리고와 그의 나라와 주변의 문제를 바로 듣고 보고 살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태도의 문제인 것이지요. 나의 문제, 나의 상황, 나의 환경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환경에만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구원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나의 문제와 나의 상황은 우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라합의 용기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또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그녀의 창문에서 내리는 밧줄에 거는 라합입니다.
“내 부모와 내 형제들과 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고 우리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해주십시오.”(2:13)
이 순간의 결단은 라합의 인생과 그녀의 모든 가족들의 삶과 그녀의 후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게 됩니다.
어떤 일에 우리의 생명을 걸고 있습니까?
나로 인하여 나와 내 가족과 우리의 다음세대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습니다. 라합처럼 말이지요.
그러러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여호수아야 강하고 담대하여라.”
여호수아 2장에서 등장하는 라합이 바로 여호수아가 되는 것이지요. 강하고 담대하게 라합은 그녀가 할수 있는 일을 다합니다.
그녀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라합은 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 그리고 아래로는 땅에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2:11)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우리교회의 표어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앞 6장 4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될 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음을 라합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마지막으로 그 약속을 끝내 지켜냄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두 정탐꾼은 라합에게 3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고
둘째 가족들을 모두 집으로 모으고 절대 나가지 말며
셋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말 것
무릇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2021년 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 (열왕기상 2:3)
찬양 _ 찬송가 560장 주의 발자취를 따름이
주기도문 (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