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22번 시편37편

(인도자)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회중)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잩할 것임이로다
(인도자)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회중)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인도자)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회중)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인도자)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회중)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다같이)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1-8)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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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여호수아 5장 1~12절  "길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1월의 마지막주일입니다.

‘새해 한 달도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하다보니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말의 되내임이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처 살피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담겨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듯 오늘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살피지 못한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마음에서 꺼내 기도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2개의 돌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처음 밟을 그 땅에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의 12개의 돌이 세워질 동안 가나안 땅, 아모리 족속들은 그런 이스라엘에게 놀라고 요단강 물이 그침으로 그들은 정신을 잃었다고 여호수아 5장 1절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지 40년, 가나안 땅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가나안 땅, 가나안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향하는 곳, 그 땅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몰랐을지라도 가나안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이집트를 떠난, 노예였던 그들이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 장막을 치니,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당시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 이야기는 늘 그 끝이 궁금하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어떻게 됐어?”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 대단한 결말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헤메이며 좀처럼 결말이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40년입니다.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조롱으로 바뀌어 갔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들, 나라도 없고, 군대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요, 그저 조롱과 멸시, 연민과 동정의 대상일 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라합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 말씀을 전했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을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라합은 가나안 땅 사람들과 다르게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라합은 요단강 건너편에서 아모리 땅에 속한 두 족속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패하자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그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12개의 돌이 세워진 땅,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처음 밟은 땅, 그 땅의 이름이 ‘길갈’입니다. 길갈(Gilgal)은 굴러간다는 뜻으로 ‘원’에서 나온 의미로 수레바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말씀에서 ‘길갈’은 다른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이집트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려 치워 버렸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오늘까지 길길이라 불리게 되었다. (5:9)

이스라엘이 그 간 겪은 일을 ‘수치’(shame)라고 성서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겪는 아픔이 끝내는 이 ‘수치’심에 이르게 되어 아픔과 고통은 “두려움”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배고픔보다 배고픔에서 나오는 수치심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배우지 못한 것보다 배우지 못함으로 겪는 수치심에 우리는 더욱 강한 척, 자기를 방어하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수치를 너희에게서 치워 버렸다.” (5:9)

이것이 12개의 돌을 세운 또 다른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단강의 물을 마르게 하시니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넜듯이 요단강을 건넙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먼저 나아가고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다 건너기까지 요단강에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것이었지요. 이 일을 마치기 전에 하나님께선 12지파의 한 사람씩 12개의 돌을 메고 먼저 ‘길갈’에 올라가 12개의 돌을 세우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던 그 자리에 12개의 돌을 세웠습니다. 이 일이 다 마치자 요단강 물이 다시 흘렀습니다.

길갈에 세워진 12개의 돌이 이스라엘의 ‘수치’를 치워버린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수치’를 치우고 12개의 돌을 세우게 하시는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음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할례”와 “유월절”을 다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칼들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여라.” (5:2)

아모리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에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사건의 대단한 결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세상은 그 결과에 놀랄 때,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명하십니다. 할례는 즐거운 축제가 아닙니다. 할례는 남성의 포피를 잘라내는 신성한 의식으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백성들은 할례를 다 받고 다 나을 때까지 진영 안에 머물러 있었다.”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은 그들의 진영, 그들의 장막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이 그 결과에 놀라, 소란하고 정신을 잃었을 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을 인정하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과와 결말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오시길 원하십니다. 가야할 길이 있음을 다시 기억하길 원하십니다.

이러한 고백이 바로 할례와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형식은 그 마음의 표현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형식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는 것에는 뜻과 힘,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길갈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키게 된 이스라엘은 유월절 다음 날 그 땅에서 난 소산물을 먹었는데 바로 누룩없는 빵인 무교병과 볶은 곡식입니다. 이 날부터, 광야에서부터 내렸던 생명의 양식인 만나가 그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소산물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 땅의 소산물(produce)을 먹는 것과 만나를 먹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쌓아두는 것입니다. 만나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약속입니다. 만나를 쌓아 둘 수 있는 날은 오직 6번째 날, 안식일을 위하여 쌓아두는 것 외에는 하루가 지나면 모두 썩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소산물은 ‘수확’하여 쌓아둘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난다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할례와 유월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였는지 기억하고 다시 하나님과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길갈”이 교회가 되기를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우리의 수치를 치워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진정 “길갈”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찬양 _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기도문 (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