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22장 만유의 주 앞에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33번 시편 72편

(인도자)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회중)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인도자)의로 말미암아 신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회중)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인도자)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회중)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내리리니
(인도자)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회중)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1-8)
(다같이)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11)

송영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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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여호수아 7장 1~1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곧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멸시켜서 온전히 여호와께 바쳐야 할 물건 때문에 죄를 지었다. 그것은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며 삽디의 손자이며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온전히 여호와께 바쳐야 할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7:1)

7장 1절의 말씀입니다. 앞의 6장 27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의 소문이 온 땅에 두루 퍼졌다.”는 말씀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일 뿐 아니라 2절의 말씀은 1절과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들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 성으로 보내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시오.” (7:2)

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고 이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2절에서 여호수아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바로 여리고 옆 아이 성을 정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아이 성에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이 성을 정탐하고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 올라가지 않고 2천명이나 3천명 만 올라가도 아이 성을 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수가 적기 때문에 모든 백성을 굳이 고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7:3)

그렇게 해서 3천명 쯤되는 사람들이 아이성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의 3천명은 아이 성에서 도망을 치고 36명이 목숨을 잃고 아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성에서 몰아내는 것 뿐만아니라 끝까지 쫓아 와 이스라엘을 치니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았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마음이 녹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셨고 여호수아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참담한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 죄(sin, crime)의 속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가 시작될 때 우리는 “모르게”라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모르게, 아니, 사람들은 모를거야하는 마음에서 “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아시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사람들이 모르게 짓는 “죄”를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 말은 또한 사람들이 모르게 행하는 “선함”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여호수아가 자기 옷들을 찢고 여호와의 궤(언약궤)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저녁 때까지 엎드려 있었다.” (7:6)

이어지는 7절부터 9절까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멸망시키려 하십니까?”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호수가 묻습니다. “주님, 무엇이 문제입니까?”

지난 주 말씀을 통해 기도란 때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전했었습니다. 그 말씀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기도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일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기도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왜 네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느냐?”(7:10)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어겼고 또한 전멸시켜서 내게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들을 도둑질해서 가져갔으며 속이고 자기들의 물건 속에 두었다.”(7:11)

여리고 정복의 최종 단계

1. 여리고를 전멸하라. 단, 하나님의 사람, 라합과 그 가족은 살려두어라.

2. 성 안의 모든 것, 남자와 여자와 아이, 소와 양과 나귀를 전멸시켜 희생 제물로 온전히 바쳐라.

3. 모든 금, 은, 놋과 철로 된 기구들은 구별하여 여호와의 창고에 넣어 두어라.

4.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결코 욕심을 내지 말아라.

이 명령을 이스라엘의 자손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진멸까지?

죄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가 떠오릅니다. 모두 멸망하였지요.

결국 죄로 쌓아올린 도성은 멸망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죄로 욕망과 욕심으로 쌓아올린 모든 것은 무너진다는 의미입니다. "아니겠지, 우리는 아니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5000년 된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여리고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부를 물려받고 거기도 흔히 말하는 부모님 찬스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대대손손 잘사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끝이 있음을 하나님은 보여주고 계십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잠언 24장 1절의 말씀이다.

분명 그 끝이 있습니다.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부인해봐도 무너지는 도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로 쌓아 올린 모든 것, 불의와 부패, 욕망과 탐욕으로 쌓은 모든 것들은 무너진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날이 언제일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합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에 구원 받은 백성이 있습니다. 라합 말입니다. 그녀의 상황과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구원받았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날에, 그 무너진 도성에서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 속 허영의 도시가 다시 떠오릅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허영과 사치, 향락과 욕망,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찬 도시, 그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허영의 도시에 사는 믿음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수치와 모멸감에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반드시 무너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여리고 성이 부자요. 풍요롭고 가진 것이 많아 무너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아름다운 것이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 가졌냐?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얻었냐?의 문제입니다. 공의와 정의로 선하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우리도 거룩한 그 길을 위에서, 길갈에서 할례 이후에 유월절을 지나 그 소산물을 먹는 복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명확한 본보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여리고 성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쌓아올린 욕망의 도성이 우리의 죄로 쌓아 올린 모든 재물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때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우리가 쌓아 올린 죄의 도성이 더욱 무너뜨리리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간의 범죄,

하나님은 아무것도 갖지 말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었으나 아간은 "아름다운 겉옷 한벌과 은 200세겔, 금 5세겔을 자신의 천막 안 땅 속에 숨겨두었습니다. 이것이 7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스라엘 자손의 죄였던 것입니다. (세겔=11~13g)

그의 죄는 그리 큰 범죄가 아닐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간은 사람들이 모를 수 있는 만큼 “죄”를 지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쌓인 재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을 것이며 그 중에 자신의 노력이 얼마간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많은 것들 중에 이 정도는 괜찮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비합리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중을 생각해 보면 더욱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라 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부정한 것, 죄로 쌓아 올린 것은 결국 멸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죄”로 쌓아 올린 것은 그 결과가 참혹한 것입니다. 그 아이까지도 진멸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우리가 쌓아 올린 여리고 성은 없는지요? 아간과 같은 생각으로 아간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숨김없이 진실하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오늘, 그렇게 이번 주 수요일, 17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주기도문 (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