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60번 시편139편
(인도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회중)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인도자)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회중)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4)
(인도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회중)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고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인도자)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회중)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7-10)
(인도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회중)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23-24)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말씀 _ 예레미야 17장 5~11절,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락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7장 전체는 1~18절과 19~27절로 구별되지만 1~18절은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1~13절, 1~11절 두 개의 견해로 나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절부터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는 문장을 통해 오늘의 본문 말씀이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단어를 들으실 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지요?
혹시 산타 할아버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제우스?
하나님의 이름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6장 2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여호와(영어: Jehovah)는 히브리어 יהוה를 모음화 음역한 것으로,
4개의 히브리어 자음인 י (요드), ה (헤), ו (바브), ה (헤)로 구성되어 있으며,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이라고도 불립니다.
어원 분석을 보면, יהוה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 (היה)”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존재하다” 또는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존하는 존재임을 나타내며, 성경에서 하야 (Strong’s)라는 단어는 “I AM”으로 번역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אהיה אשר אהי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계시하셨는데, 이는 “I AM WHO I AM” 또는 “나는 나다”라는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 여호와는 히브리 전통에서 표기만 한 채 발음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음가(音價)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아도나이(나의 주님이란 뜻)’로 읽고, 우리는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능력을 알려서 우리에게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인 줄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출애굽기 3장 14절의 언약을 기억하고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언약의 조건들을 돌판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 언약의 조건, 즉 십계명이라 불리는 이 언약의 조건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지만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는 분명한 조건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언약’입니다.
언약(言約, 히브리어: בְּרִיתוֹת, 영어: covenant)은 계약이면서 동시에 계명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0~3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새 언약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새 언약은 예수를 통해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입니다. 이제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사함을 받고(행 10:43, 롬 11:27) 죄악이 기억되지 않으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사 43:25, 요 5:24, 요일 1:9) 이것이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지는 돌판(십계명)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에서 깨달아야하는 것은 이 ‘언약’이 ‘계약’관계라는 것입니다. 또는 계약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16장 21절 말씀으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곧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다는 것이며 그러니 언약 밖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 17장 5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5절부터 8절까지는 두 길의 인생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여호와를 떠난 사람의 길(5,6절)과 다른 하나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의 길(7,8절)입니다.
저주와 복,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5절과 7절의 대비는 저주 받을 사람과 복 받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인데 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 누구냐?하면 첫째, 사람을 믿는 사람, 둘째,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은 사람(자신의 힘을 그 자신에게 두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사람을 믿고 그 사람들을 통해 권력을 얻는 사람을 경계해야합니다. 이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지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그들에게 ‘여호와’의 능력, 권능이 임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놀라운 ‘권능’을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여호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시 말해 ‘언약’ 안에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의 복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2.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3. 그 잎이 청청하며
4. 가뭄의 해에도 걱정이 없고
5.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그런데 여러분, ‘복’은 여호와를 의지함의 ‘결과’입니다.
‘복’을 위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맞을지라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즉, 언약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 말이 어려우시다면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9절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우리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마음의 특성은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되고, 부패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대로의 위험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불교의 수행은 이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10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 그래야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함으로) 마음을 시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옴으로 우리의 폐부까지도 알게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수행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고 시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우리에게 반드시 그 행위와 행실대로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것입니다.
찬양 _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