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4번 시편126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회중)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인도자)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인도자)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소서
(회중) 눈물을 흘리며 시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다같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6)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말씀 _ 예레미야 1장 4~10절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의 본문을 선택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장 4-10절입니다. 신약 말씀은 지난 주 말씀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4장 21-30절입니다.
지난 주일은 “오늘”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오늘 이 성경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구약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레미야(히브리어: יִרְמְיָהו 이르미야후, 영어: Jeremiah 줴러마이어)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구약성경의 대예언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대예언자라함은 예언서가 대예언서, 소예언서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대예언서(大豫言書, 영어: Major Prophets)는 장문(長文)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5권을 말합니다.
소예언서(minor prophet)는 서기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분류하여 호세아로부터 말라기까지 12권입니다. 이 소예언서는 아시리아와 바빌론, 페르시아 제국을 포함하는 약 400년 동안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3권의 예언서들은 북방왕국을 향한 책들이며 (요나, 아모스, 호세아), 6권의 책들은 남방왕국을 향한 예언들입니다.(오바디야, 요엘, 미가, 나훔, 스바니야, 하박국). 나머지 3권은 포로귀환 이후의 예언서입니다.(학개, 즈가리야, 말라기).

선지자? 예언자? 그리스어: προφήτης (프로페테스) 영어: Oracle, Prophet.
선지자 또는 예언자의 히브리어 원어(Nabi)의 뜻은 ‘입’ 입니다. נביא(나비)는 Nabu(부르다)의 수동형으로 즉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로서 미래에 대해 말하는 예언자들이 아니라, 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시내 산 언약의 말씀)을 공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언자는 악에 민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지자는 당시 사회의 악과 범죄, 자기 만족, 고집, 혼합주의를 정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악들을 지적하여 백성들을 회개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대립이 되는 모든 악에 민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은 독창적인 사상가도, 황홀경에 빠져서 예언하는 광신자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부름받은 여호와의 대변인이었습니다. (김지찬 저 구약개론 171-177쪽 요약)
이 시대가 이제, 예언자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목사가, 이제 예언자의 소명에 순복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북쪽,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 침략으로 멸망했습니다. 반쪽만 남은 이스라엘의 이름은 유다왕국입니다.

이 유다왕국에서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에 하늘의 소명을 받고 그후 약 40년간 활동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장 1~3절 말씀입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잘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다.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으며, 그 이후에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 제11년 곧 그 해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왕국의 3대 선왕(善王) 중 하나인 요시야왕이 선정을 베풀던 평화로운 시기에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이미 멸망한 앗수르 제국의 판도하에서 바벨론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출병한 요시야 왕은 애굽 왕 느고를 맞아 므깃도에서 전투하다 죽음으로써 유다 왕국의 평화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왕하 23:29-30).
애굽은 요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킨 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고, 친 애굽파이던 여호야김은 서진 정책을 펼치던 바벨론에 의해 다시 폐위되고 여호야긴이 즉위하였으나 그 역시 친 애굽 정책을 지속하자 바벨론은 여호야긴을 폐위시키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우는 등 유다 왕국의 내정은 외세에 의해 끊임없이 간섭당하였습니다.
결국 유다 왕국은 시드기야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는데(B.C. 586년경),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런 혼란기 때 유다 백성에게 나라의 혼란이 국방력 열세에 있지 않고 백성, 특히 지도자들의 범죄 행위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철저한 회개만이 살 길임을 촉구하였습니다.
시대가 어려울 때, 암울하기 그지 없을 때, 왕국의 혼란, 전쟁과 전복, 한 마디로 누가봐도 망하고 있는 시기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너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웠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지금요? 제가요? 왜요?
저의 답도 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 예레미야의 답을 들어보시지요.
“오 주 여호와시여!, 저는 아직 어린아이라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
예레미야의 대답은 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사실,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예레미야와 저와 여러분이 간과한 것이지요.
5절 말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내가 너를 어머니 배에서 짓기 전에 알았다.
2. 네가 그 태(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거룩하게 구별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고 예레미야를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답정너”의 훌륭한 예인 것이지요.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언자 중에서 예레미야만큼 인간적인 고뇌를 호소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민중에게 전도한다는 일은 조롱과 욕설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일이고, 예언활동을 그만두려고 하면 신의 말씀이 마음 속으로부터 불과 같이 타올라 억누를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감히, 저도 깊이 공감이 가는 요즘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유다왕국의 개혁의 노력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신명기의 정신에 따른 종교 개혁에 처음에는 호의적이었으나, 이와 같은 제도적인 변혁이 종교적·사회적 생활의 순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욱 공감되는 지점이지요.)
오히려 그는 예루살렘 신전에 대한 맹목적이고 미신적인 숭배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게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새로운 계약'을 촉구합니다.
“새로운 계약”은 이스라엘인들의 완고하고 어리석은 마음에 의하여 깨어진 모세 시대의 계약과는 달리 율법의 내면화·개인화의 새로운 계약을 갱신해야한다는 것입니다.
40년의 세월동안 예레미야가 부르짖은 것은 회개, 즉 진정한 변화입니다.
유다왕국은 아시는 것처럼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바벨론도 멸망합니다. 예레미야 51장 57절 말씀입니다.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왕인 내가 말한다. 내가 바벨론의 고관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총독과 지방장관들과 용사까지 취하게 하여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영원한 잠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러면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계약에 동의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지난주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오늘 예레미야서에서도 듣게 됩니다.
1장 12절 말씀입니다. “나는 내 말이 이루어지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너희 가운데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 (눅4:21)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1장 7절 말씀입니다.
1. 너는 내가 누구에게 보내든지 그에게로 가야만 하고
2.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해야만 한다.
2024년 연말과 2025년 연시 참으로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에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렇게 애를 쓰면서, 저렇게 버티고 또 일하는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누가복음 4장 18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 먼 사람들에게 눈 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케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기 위하여 나를 보내셨다.”
시대가 어둡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염려와 근심 뿐입니다. 남들에 비해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창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줄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허물고 멸망시키고 무너뜨리고 세우고 심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오늘, 듣는 이들 가운데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을 한 구절 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네가 젊은 시절의 헌신과 네 신부 시절의 사랑을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렘2:2)
찬양 _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등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