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27번 사순절(4)
(인도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인도자)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회중)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인도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 33:12-16)
(회중)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인도자)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요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회중)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0-22)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예레미야 30장 15~1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레미야서입니다.
예레미야(Jeremiah)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여호와께서 풀어주신다’는 뜻으로 베냐민의 성읍인 아나돗의 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성별되어 그의 삶은 이미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prophet)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남유다 요시야 왕 제13년(B.C. 627년경), 그의 나이 20세였습니다.


그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함락과 남유다의 멸망(B.C. 586년), 그리고 바벨론 포로라는 비극적인 역사 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입술로서 ‘회개’와 ‘회복’, ‘메시야의 구원’을 선포하면서 이스라엘과 함께 고통과 탄식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1:9)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렘16:21)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렘30:11)
이러한 예레미야를 오늘, 부르그만은 예언자에서 시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선지자의 기록으로 읽었던 우리에게 예레미야서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계시’라고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啓示, revelation)는 ‘···로부터 베일을 벗기다’, ‘펼쳐서 보여 주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어 밝히는 행위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구원의 신비와 거룩한 진리, 뜻과 섭리를 사람들에게 친히 나타내 보여 주시는 거룩한 행위이며 ‘묵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3:3)
그래서 ‘계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으로서의 계시는 본래,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신비를 담고 있기에 우리가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부르그만은 예언자 예레미야에서 시인 예레미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책임은 기록한 그 ‘시’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며, 시인은 그 세계를 열어 보여 주어 시인을 포함한 우리가 그 순간까지 무엇을 보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는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어보면
본문의 ‘시’는 사랑하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한 도시 때문에 시인이 받은 상처의 두께와 깊이, 모순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0장 15절에서 16절 말씀을 다시 읽어봅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시인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너’인 이스라엘을 통해 받은 상처와 아픔과 상실과 고통,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하기에 용납할 수 없는 그 모순(矛盾, Widerspruch)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내 ‘사랑’이 이깁니다. 세상에선 ‘사랑’이 언제나 이긴다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사랑’이 이기고 그 ‘사랑’이 시 속에 풍성히 녹아 들어 있다고 부르그만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는 패배하고 추방되고 회복되는 예루살렘의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같은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고통에 빠졌다가 기쁨을 얻는 이야기, 상실을 겪었다가 선물을 받는 이야기, 슬픔 가운데 집을 잃었다가 안녕히 집으로 귀환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하나님의 고통과 상처는 우리를 사랑하심에서 나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은 상처받고 고통 가운데 계십니다.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우리보다 더 갚은 상처와 고통의 한 가운데 우리와 함께 서 있는 유일한 '신'의 목소리입니다.
“사랑한다.” “더욱 사랑한다.”
신의 음성은 심판을 전하고 있지만 그 순간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신의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마침내 우리를 그에게로 인도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그만은 예레미야서의 하나님은 ‘소외’를 뚫고 ‘고통’의 침묵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치유하는 ‘새로움’으로 오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는 더나아가 성금요일에 버림받고 토요일에 죽음의 심연으로 들어가 주일에 부활을 위해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며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가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도 매순간마다 죽음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나오기를 반복하며 동일한 이야기를 살아내고 그래서 부르그만은 반복되는 우리들의 삶을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로 새롭게 바라보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우리들의 이 죽음의 절망과 새 생명의 회복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무 바쁘고, 너무 냉소적이고, 너무 불안하고, 너무 부정할 만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새 생명의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패배하고 추방되었지만 회복되는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실패와 패배, 좌절과 절망, 심판의 두려움, 상실과 고통을 지나 회복의 노래로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고통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기쁨의 샘이 되고 상실한 이들에게 놀라운 선물이 되고, 슬픔 가운데 집을 잃은 이들에게 교회가 저들의 영원한 안식의 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시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피할 수 없는 상실의 시기가 있지만 그 너머에 희망이 있으며 그 사이에 깊은 성찰의 시간이 있다는 부르그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사순절기가 어떠한 의미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이 깊은 절기에 저마다의 노래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부활을 향해 기꺼이 순례의 시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