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1번 에베소서 4장
(인도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회중)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인도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회중)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인도자)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회중)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인도자)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회중)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다같이)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1-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83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
말씀 _ 요한복음 10장 1~10절
나는 양들의 문이다.
1. 설교를 다시 정리하는 이유
제가 단톡방에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저희가 요즘에는 설교를 녹음하고 나서 다시 정리를 하여 말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설교를 위해 미리 써놓은 원고와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설교하는 내용이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리를 하다 보면 한 주씩 밀려가고 있기도 합니다.
다행히 요즘 AI가 참 훌륭합니다. 제가 녹음한 것을 보니 발음 때문에 텍스트가 실제와 다르게 오타투성이라 걱정했는데, AI가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서 싹 다 수정을 해주더라고요. 정말 놀라웠습니다.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오늘도 홈페이지에 말씀 텍스트를 바로 올리지 않고 정리를 거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 교회가 '살아있는 이야기'와 '신앙의 자리'를 통해 신학적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공동체의 고백이 더 진지하게 담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비유란 무엇인가: 마음의 과장법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무엇으로 말씀하십니까? 바로 '비유'입니다. 여러분, 비유가 무엇입니까? 언제 비유를 사용합니까?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비유는 무언가를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특히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할 때, 일상적인 숨 쉬는 이야기들을 빌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합니다.
아무리 신학적, 철학적으로 논리정연하게 나열하고 열거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해 시키기 위해 특정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김세은은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할 때, 그 '좋은 사람'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 중학생 친구가 말해준 것처럼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이 '천사'라는 이미지를 통해 김세은이라는 사람을 훨씬 더 풍요롭게 상상하게 됩니다.
단순히 나에게 밥을 사주고, 옷을 사주고, 나보다 먼저 나오고... 이런 나열보다 "천사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에는 어떤 이미지가 생깁니다. 한 신학자는 이를 '마음의 과장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세은 집사님이 진짜 날아다니는 천사는 아니지만, "천사 같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의 과장법'이 생기며 훨씬 더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도 마음의 과장법을 충분히 사용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깨닫기 위해, 우리의 영적 세포를 깨우고 인사이트(영감)를 얻기 위해 이 비유를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또 다른 이유는,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의 영역으로 남겨두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듣는 자는 들을 것이고 아는 자는 알게 될 것입니다.
3.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이미지는 '목자'입니다.
이 목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몽골의 김세은집사님이 제일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설교를 준비하며 그때 초원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김세은 집사님 사촌 가족들이 있는 그 광활한 초원에 양 떼와 말 떼가 있었지요. 우리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고, 손님인 우리와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카사위 되는 분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먼 곳을 향해 말을 타고 훅 달려가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저 멀리 양 떼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순식간에 달려가 휘파람을 불며 무언가를 하더니, 양들이 일사불란하게 쫙 쫓아오는 그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고 신기했습니다.
목자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시선을 한 번도 양 떼에서 떼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말똥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저 멀리 있는 게 양인지 소인지 구분도 못 했는데, 목자는 모든 것을 시야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목자의 이미지입니다.
4. 현대 사회에서의 목자와 목사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며 "내 양을 치라,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장 때문에 오늘날 목사가 '목자'의 이미지로 이해됩니다. 저는 스스로를 설교하는 사람(스피커)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해왔지만,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목사의 이미지는 양을 다스리고 이끌고 먹이는 목자였습니다.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 제가 그런 목자의 이미지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가 생각하면 참 어렵습니다. 양을 치듯 여러분을 그렇게 이끄는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교를 준비하며 김세은 집사님의 말씀을 통해 힌트를 얻었습니다. 집사님이 "다른 사람 이야기는 몰라도 목사님 이야기는 다 알아듣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초원을 누비거나 실제로 꼴을 먹이지는 못해도, 성도가 목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목자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제 이야기를 알아듣고 계십니까? 저의 음성을 잘 듣고 계십니까?
5. 문지기와 하나님 나라의 비유
요한복음 10장 3절을 다시 보면 문지기, 양, 그리고 목자가 등장합니다. 문지기는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냅니다. 여기서 문지기는 목자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줍니다. 양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목자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다시 마음의 과장법을 써봅시다. 목자가 예수님이고 양이 저와 여러분이라면, 문지기는 누구일까요? 저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함께 거하는 이 '우리'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중의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지키고 계실 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다 알 수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승연아, 시은아, 호준아" 하고 이름을 부르시면 하나님께서 그 목자를 보고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그 문을 통해 들어가는 이 장면, 여러분 어떠십니까?
6. 생명과 풍성한 삶의 약속
우리가 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까? 10절에 그 결론이 나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른 종교와 구분되는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그 결과값은 명확합니다.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 믿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면 도둑과 강도가 원하는 것은 멸망입니다. 다른 종교들이 인간에게 무엇을 약속하는지 보십시오. 진정한 생명과 풍요보다는 인간에게 숭배와 경배 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망했다, 희망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부정적인 음성들이 쏟아집니다. 청년들이 말하는 '삼포, 사포, 오포' 같은 언어들이 우리를 흔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떤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나의 음성을 듣는다." 세상의 소음을 뒤로하고, 우리에게 생명과 풍요를 약속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7. 예수 그리스도는 '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는 문이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18편 19~20절을 보면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들의 특징 중 하나는 반드시 문을 통해서 들어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을 통과할 때 비로소 생명을 얻고 풍성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처럼 선한 것에는 지혜롭고 악한 것에는 문을 닫아야 하듯이, 우리에게는 기준이 되는 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바로 그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우리의 의지와 자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라는 문을 통과할 때만 진정한 생명과 풍요로운 삶이 허락됩니다.
2026년, 여러분이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꿈과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이 풍성하게 임할 것입니다. 오늘 이 목자와 양, 그리고 '문'이신 예수님의 이미지를 마음 깊이 새기시어, 모든 삶의 순간에 주님의 문을 통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