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98번 어버이주일

(인도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회중)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인도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회중)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1:8-9)
(인도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회중)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인도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회중)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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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말씀 _ 요한복음 10장 22~29절, 너희는 내 양떼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믿지 않는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5:1-10:42은 유대인의 중요한 축제들을 중심으로 단락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Brown (John, The Anchor Bible)

  1. 안식일의 예수(5:1-47)
  2. 유월절의 예수(6:1-71)
  3. 장막절의 예수(7:1-8:59) 장막절(초막절,feast of booths :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유대인의 절기
  4. 장막절 이후(9:1-10:21)
  5. 수전절(Dedication)의 예수(10:22-39)

 

오늘의 본문말씀 10장 22절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은 수전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수전절은[修殿節, feast of dedication] 예수님 시대와 멀지 않은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의 절기 중에서 가장 최근에 기념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단 자리에 제우스 동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히자 B.C. 164년경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가 군사를 일으켜 수리아 군대를 물리치고 성전을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날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외경 마카비상 4:52-59; 마카비하 10:5). ‘봉헌절’ 혹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하누카’라고 합니다. 유대 종교력 9월(양력 11-12월) 25일부터 8일 간 절기를 지켰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절기를 ‘빛의 절기’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수전절이 되면

① 이스라엘 각 가정에서는 가지가 여덟 개인 촛대에 하루에 한 등씩 불을 밝혀 8일째는 촛대의 불을 모두 밝혔기 때무닙니다. 이런 점에서 수전절은 ‘등화제’(Lights)로도 불렸습니다.

② 성전에서는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 곧 ‘할렐’(Hallel, 시 113-118편)을 부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③ 그런데 수전절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각 가정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수전절은 두 가지 영적 의미를 갖는데,

첫째, 성전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성전과도 같은 성도들이 항상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비유하신 것에서 볼 수 있듯이(요 9:5) 성도 역시 날마다 빛 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수전절의 절기에, 요한은 10장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선한목자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21절 말씀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라는 제목으로, 요한복음의 중요한 사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10장 1~21절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도 연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맥락 안에서 오늘의 본문 말씀은 다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배경(22-23절)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 수전절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빼앗긴 성전을 되찾고, 성전을 정화한 이 엄청난 사건은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을 다시 꿈꾸게 하였을 것입니다. 다시,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 성전을 되찾은 이스라엘은 곧 오실 메시야를! 약 천년의 약속이 이루어져 다윗 왕국의 부활을 꿈꾸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수전절의 축제에 예수님께선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선한 목자’라고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질문(24절)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가지게 할 작정이오?”

24절의 이 문장은 문자적으로,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갈 것이냐?”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5~9장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장면이 계속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두는 예수를 죽이고자 한다.(5:18)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다.(7:1)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고 시도한다.(8:59)

결국 10장 31절에서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유, 즉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이미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결정을 하였다는 것을 9장 22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벌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하더니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시오”

이 장면은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메시아(그리스도)냐고 직접 질문을 받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25절):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믿고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할지라도 그들은 계속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들”(works)은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명확한 “말들/증언”(words)이었지만 그들은 보고도 듣고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우리가 행하는 “일들”을 통하여 우리를 드러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 내 믿음에 대하여 판단하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해 주고 있다.”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이유(26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양떼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믿지 않는다.”

예수님을 자신은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27~29절)

(1)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2) 나는 그들을 안다.

(3) 그들(양)은 나를 따른다.
(4)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5)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6)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다.
(7)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다(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진술되고 있지 않다).
(8a)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다 또는

(8b) 내 아버지가 주신 것은 만물보다 더 크다.
(9)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예수님의 설명을, 주어를 기준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아집니다.

1. 주어가 양인 경우

(1) 그들은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

(3) 그들은 예수를 따른다.
(5)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8b)그들(내 아버지께서 주신 것들)은 만물보다 더 크다(=더 중요하다).

2. 주어가 예수인 경우

(2) 예수는 그들을 아신다.
(4) 예수는 양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런데 여기서 “아는 것(ginosko)”에는 알려진 사람이나 물건과의 직접적인 개인의 관여가 없이 아는 것에서부터, 이를테면 사람과의 직접적인 관계의 지속을 통해 획득한 지식으로 누군가에 “관해 알게 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의미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절에서의 쟁점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앎)”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지식(앎)입니다.

예수는 나다나엘을 아신다(1:48)

예수는 모든 사람들을 아시고, 그들 속에 있는 것을 아신다(2:24-25)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를 아신다(4:1)

예수는 병자가 여러 해 전부터 연못에 있다는 것을 아신다(5:6)

예수는 “유대인들”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5:42)

예수는 무리가 자신을 임금삼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아신다(6:15)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신다(8:55;10:15;17:25)

예수는 그의 양을 아신다(10:14,17)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무슨 질문을 하고자 하는가를 아신다(16:19)

3. 주어가 아버지인 경우

(7) 아버지가 예수에게 [양]을 주신다.
(8a) 아버지께서 만물보다 더 크시다.

요한복음 15장 16절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경우, 아버지가 주어가 되는 경우, 이 때 우리는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양 떼의 일원입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속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양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우리의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어가 하나님이 되는 그 순간,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4. 주어가 명확하지 않은 진술들

(6) 아무도 예수의 손에서 양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9)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양을 빼앗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야 가능한 일들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상처받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존엄을,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다윗과 수많은 시편의 노래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시편23:4)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의 주어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그가 우리를 오늘도 인도하십니다. 선한목자를 따라 그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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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