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35번 시편84편

(인도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회중)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인도자)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회중)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인도자)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회중)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인도자) 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회중)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인도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1-6)
(회중)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인도자)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
(회중)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2)

송영  _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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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11장 17~27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나사로,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믿음의 증거가 되어 부활을 소망하게 된 이야길 것이요. 또 다른 누군가에겐 죽음을 이길 유일한 방법으로 진짜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 이들에게 나사로가 누구냐?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사로는? ......”

제가 요한복음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요. 제가 기독교인 것을 고백하게 한 말씀이 오늘의 본문 11장 3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나사로의 집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굳이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시고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 깊이 비통해 하시고 불쌍히 여기셨다.(요11:33)

마리아 슬픔과 고통, 상실, 후회의 울음에 예수님은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우리의 아픔은 예수님의 고통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기쁨은 예수님의 슬픔과 기쁨입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우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어느 날부터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렇게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선 교회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그리스도인 것을, 교회 다니는 것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우십니다. 우리의 눈물은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이제, 나사로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나사로는 누구일까요?”

성경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요.

구약성경 요나서 1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죽었다기 보다는 바다에 던져졌고 고래에게 삼켜 3일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다시 육지로 토해진 요나입니다. 열왕기하 14장 25절을 통해 요나 선지자가 여로보암 2세(B.C. 793-753년) 때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또 다른 사람은 엘리야를 통해 살아난 사르밧 과부의 아들과 엘리사를 통해 살아난 수넴여인의 아들,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 살아난 욥바에 사는 도르가, 유두고, 예수님을 통해 살아난 사람들이 마가복음 5장 41절의 야이로의 딸, 누가복음 7장 15절 나인성 과부의 아들,

오늘 본문 말씀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야기는 죽은 지 하루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네 장례식은 3일장에서 7일장으로 치러집니다. 완전한 죽음,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4일)이나 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11장 14절에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요11:14) 그렇습니다. 성경 속에서 완전한 죽음 이후 완벽하게 부활한 사람은 오직 나사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가 왜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가장 나중에 기록된 문서라는 점에서 다른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말씀을 요한이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시기 상의 문제인데 아마도 ‘나사로’와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85년에서 90년 사이에 기록되었기에 나사로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인지 부활의 주인공 ‘나사로’가 누구인지 성경은 단지 베다니의 나사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로만 전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라고 하는 어떤 병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살고 있었다. (요11:1)

그리고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요12:3)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였고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빠였다. (요11:2)

베다니 [Bethany]는  ‘가난한 자의 집’(Eusebius), 혹은 ‘푸른 과일의 집’(Talmud)이란 뜻입니다. 예루살렘 근처 마을 - 예루살렘에서 동쪽 여리고로 가는 길목 약 3㎞ 지점, 감람산 남동 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병환자 시몬의 집도 베다니에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천도 이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누구인지보다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8)

나사로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5절과 11절, 그리고 36절 말씀에서 나사로를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친구 나사로”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그녀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어 있다.
보라, 그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저는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지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예수님의 친구가 나라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그 친구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친구, 나사로의 죽음은 ‘부활’을 향한 과정이었습니다.

부활(復活, resurrection)은 말 그대로 ‘죽은 자가 다시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9)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12-1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마27:52~53)

부활을 믿으십니까? 부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것입니다. 과학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믿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르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11:25~26)

그리고 부활을 설명할 순 없지만, 이해시킬 순 없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수넴 여인의 아들, 사르밧 과부의 아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요나가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부활을 목격한 이들이 있습니다.

파수꾼과 장로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군병들이 알고 있었으며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베드로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도마와 사도들, 오백여명의 형제들과 야고보와 바울, 스데반 집사와 사도 요한이 부활의 목격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편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16편 10~11절 말씀입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는 죽었고 죽은 나사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나사로의 부활은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의 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닙니다.

병든 자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약 전반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와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모두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결코 상징적인 예화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분명한 사실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는 살아났습니다. 놀랍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흔히 ‘기적’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나사로의 무덤 앞 돌을 옮겼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 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기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하려는 것입니다.” (요11:41~42)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진정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임이 그러하듯이 그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야, 나오너라!

나사로는 죽었고 무덤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갇힌 자들, 고통과 가난과 질병과 두려움과 분노와 원망, 소외와 외면, 폭력과 혼란의 무덤에 갇혀 죽은 자들을 상징하게 됩니다.

절망, 소망이 없는 죽음의 문화는 우리를 계속하여 “포기와 좌절”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절망’이라고 이야기하였지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십시오. 가난과 질병, 폭력에 갇힌 자들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기성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또, 사치와 향락, 유흥과 쾌락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갇힌 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야, 나오너라!”

그의 음성을 들으시는 오늘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으며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요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살아날 때가 오고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요5:25)
“선을 행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을 것이요.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요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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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