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2장 만유의 주 앞에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8번 사순절 제5주
(인도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회중)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회중)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인도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회중)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회중)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1-8)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해도
말씀 _ 요한복음 11장 1~44절 (1-7, 17-27, 38-44)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나사로’라는 한 청년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예수님께서 알고 계셨고 그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으로 오신 후 믿을 수 없는 사건을 그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목격하게 됩니다. 죽은 그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심지어 ‘나사로’는 죽은지 ‘3일’이 지났습니다.
이미 그의 장례식이 치러졌고 그의 무덤(동굴)은 ‘커다란 돌’로 막혔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살아난 것입니다. 나사로의 집에 그의 장례식을 위하여 모인 엄청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 일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의 목격자들 중 그 누구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많은 증인이 없었다면,,, 믿을 수 없는 그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사로는 요한복음에서만 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대신에 그의 누이들의 이름은 누가복음 10장에서 등장하지요.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누가복음 10장(38~42절)과 요한복음 11장(1~45절)을 종합해보면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는 일찍이 예수님을 따랐고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그녀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5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생들이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의 젊은 나이가 장례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슬픔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늘 그런 것처럼, 이 기적은 문자적인 의미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킨 것’이지요. 그리고 상징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믿고 계신가요?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느냐?”(37절)에서 예수님을 만난 무리들의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3일이 지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피우는 마리아와 그의 친구들을 보시고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한 그가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는가?”
이런 ‘사람들의 말’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돌을 치우라!”
그러자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이제는 그 몸에서 냄새가 납니다.” (39절)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23절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대답했습니다. “네,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치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이미 3일이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이 방금 전 그녀의 ‘고백’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들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수님은 3일 전에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너희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해 나는 거기에 있지 않았으며 너희 때문에 오히려 나는 즐거워한다. 자, 나사로에게 가자.”
마르다아와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마르다와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이심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메시아/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말은 어떤 뜻으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요한복음 6:51,58, 8:51절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내 살이며, 내 살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조상들이 먹었지만 죽은 그런 빵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육체적인 “죽음”만으로 해석한다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오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깨닫기 원하고 계십니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살아서 믿는(현재시제 분사) 사람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육체적] 사망이나 … 디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롬 8:38-39).
"사랑"이라는 단어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남매에 대한 예수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단 세 번만 사용되었지만, 이야기 전체에 관통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남께 심부름꾼을 보내, 그들 모두가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으로 죽음 직전에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예수남은 제자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고 계셨지만 즉시 베다니로 가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그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지만…”은 매우 중요한 전제(중심)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사실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즉시) 가지 않으신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었고, 나사로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 또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을 상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나는지 충분히 알고 계시지만(부활) 그의 친구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기꺼이 느끼고 표현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마르다 역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시고 그녀에게 이것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슬픔에 빠져 있을지라도 그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그녀를 기다리신다는 말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준비가 되었을 때, 그녀의 슬픔을 가지고 예수님께 오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마리아가 마르다처럼, “당신이 여기 계셨더라면…”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존경과 예수님과 그녀의 관계를 인정하는 표시로 예수의 발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의 자세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어떠할 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영원히 죽지않을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부활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