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28번 사순절(5)
(인도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회중)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회중)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인도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회중)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회중)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1-8)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말씀 _ 요한복음 12장 1~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4복음서(마태복음26:6-13; 마가복음14:3-9; 누가복음12:1-8; 요한복음12:1-8) 모두 기록된 말씀입니다. 저마다 조금은 다른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마태와 마가복음은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되고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은 조금씩 내용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문맥
오늘본문 바로 앞 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과 12장은 매우 밀접한 연결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나사로를 무덤에 매장하는 것, 돌을 옮겨야 하는 것, 죽은 자가 무덤에서부터 다시 살아가는 것은 모두 곧 발생하게 될 예수의 부활의 전조이다.(11:38-44).
•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그 이유는 나사로의 부활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다.(11:45). 공회는 예수의 인기가 로마의 보복을 야기할 것을 두려워했다.(11:48).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로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고 하면서 예수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를 정당화한다(11:50). 요한복음 기자는 가야바가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죽으실 것은 미리 말함이러라”고 설명한다(11:51).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11:53).
•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12:10-11)
따라서 11장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가 12장까지 계속된다고 이해한다면 오늘의 본문말씀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1-3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의 마지막은 6일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로 가셨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믿을 수 없는 이 일에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당혹스러워하며 누군가는 몹시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때, 또 다른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이 많은 이들 가운데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만이 예수님을 위해 “잔치”(2절)를 열었다고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 단어를 요한복음 13장과 21장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마귀는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엣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집어 넣었다.” (13:2) “식사하시 던 자리에서”(13:4)
“이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서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었다.”(21:20)
즉, “잔치”는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미리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잔치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의 예고편이라면 다음에 등장할 장면을 우리는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기 전에 이 “잔치”에서 한 여인은 모두를 진정 놀라게하며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았습니다. 이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죽었던 나사로의 누이입니다. 그녀에 대하여 우리는 알 수 있는 사실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복음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이야기를 통하여 얼마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그녀의 형제들을 사랑하셨는지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그녀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11:5) (11:28~33)
예수님께서 너무도 마리아를 사랑하셨던 것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녀의 오빠, 나사로가 그의 무덤에서 살아나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그 사건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 이해한다고 설명할 수 있는 일일까요?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증인”[證人,witness] 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8)
‘증인’(에드)의 원뜻은 ‘되풀이해서 말하다’, ‘입증하다’. 법정 용어로 ‘진실을 밝혀 시시비비를 가리게 하는 자’란 뜻(사 44:8)입니다. 이 후 헬라어 (마르튀스)는 ‘정보를 가진 자’ 혹은 ‘지식을 전달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된 소식, 즉 복음(福音)을 듣고 고백하며 증거하는 자(눅 24:48)라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이 마르튀스라는 단어에서 영어“marytyrs”(순교자)가 파생된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이 일들의 증인이다.”(누가복음 24:48)
마리아는 “증인”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는 것을 목격했고, 이 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시는 부활의 아침, 그 빈 무덤을 그녀는 보았고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사순절을 지나며, 우리 또한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2:4-6 왜 이 향유를 팔지 않았는가?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3백 그램쯤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러나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12:3)
마리아는 “증인”으로써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전하고 가장 겸손하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께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를 목격한 유다의 반응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왜 이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는가?”
유다의 말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요한은 유다의 행동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도둑이어서 돈 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훔쳐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욕망을 감추곤 마리아를 비난하며 혹여나 자신이 가져갈 수도 있었던 나드,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다며 가로채고 싶었던, 그 값비싼 향유가 쏟아진 것에 대하여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우리가 다시 살펴보아야할 것은 성경은 이미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라고 전한 부분입니다.
유다도 분명, 그 향기가 가득한 같은 공간에 있었지요. 그런데 그는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이 고장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면 그는 결코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없었겠지요?
그는 “향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돈”이 중요한 사람인 것이지요.
향유는 본래, 그 향기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얼마짜리”밖에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지요. 비싼거, 그것이 “향유”가 아닙니다. 마리아는 본래 “향유”를 주님께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드렸지만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눈이 멀어 보지 못하여 증인이 되지 못하고, 향기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사순절의 절기는 봄의 향기로 가득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계절에 그 향기를 느끼고 그 향기에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마리아를 통해 온 집안에 향유 향기가 가득하고
이미 온 세상에 봄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사순절이 찬양이 가득한 주일입니다!
찬양 _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