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9장 성도여 다함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97번 청년주일

(인도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회중)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인도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회중)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인도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회중)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인도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회중)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인도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회중)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19:9)
(인도자)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회중)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인도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회중)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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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말씀 _ 요한복음 13장 31~35절,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본문은 짧지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31-32절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

2. 33절 예수의 떠나심

3. 34-35절 새 계명

 

1.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31-32절)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인자가 영광스럽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를 통해 영광스럽게 되셨다.”

영광은 빛나는 영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월한 빛. 하나님의 임재나 긍휼, 완전성을 찬양하며 높이 드러내는 행위 등을 의미하는데 사람이나 사물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움’, ‘뛰어남’, ‘명성’ 등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다양한 단어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카보드’를 들 수 있습니다. ‘카보드’의 기본 의미는 ‘무거움’으로서, 어떤 중요함이나 가치를 나타내며, 이것이 ‘영광’(존귀, 광휘)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되어서 그분의 위엄 넘치는 현현(임재)에 대한 표현으로서, 또는 초월한 광휘(위엄, 권위, 장엄)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존함을 뜻하는 말로 묘사됩니다.(출 16:7; 24:16; 레 9:6).

‘카보드’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독사’인데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의견’(판단)이며, 여기서 ‘평가’(평판), 그리고 좀 더 발전하여 ‘영광’(영예, 광채)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예수님과 등장할 때, 어떻게 사용될까요?

첫째,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는(적어도 그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는),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다음의 말씀들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그이시라”(8:54-현재시제)

“그(진리의 성령)가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4-미래시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7:1-부정과거시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내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17:5-부정과거시제)

 

둘째, 요한복음 17장의 두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특정한 시기(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12:16).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

이 “때”는 바로 뒤의 12장 24절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11장 4절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즉, 그 사건을 통해)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결국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은 무엇인가요? 화려한 삶? 명예로움? 성공?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그 때를 깨닫고 기억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2. 예수의 떠나심(33절)

"작은 자들아/어린 자녀들아" (teknion)는 요한만의 표현입니다. 이 단어의 다른 7회의 언급들은 모두 요한1서에서 발견됩니다. 마치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부르는 호칭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씀을 두 번 전하셨지요. 요한복음 7장 34절과 8장 21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다.”

나는 떠나간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예수께서 가시는 그 곳은 어디일까요?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어디에서부터 오셨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에게로 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십니다.(요한복음 13:1a).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십니다(13:3).

그리고 “그 곳”에 너희가 있을 것이며,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12:26).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14:3-4)

또한 예수께서 잡하시기 전, 그 밤에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14장, 17장과 달리 오늘 본문 말씀은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제자들은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오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입니다. 곧, 예수께서 내일 지실 십자가를 제자들은 질 수 없습니다.

그 길, 그 곳에 예수께서는 홀로, 아버지와 성령이 하나되어 걸어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른 관점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준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올 수 없는 이유가 뒤이은 ”새계명“과 함께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지금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새 계명을 성취해야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시길 소망합니다.

 

3. 새 계명(34-35절)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종교를 갖고 있지만,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from Thoughts on Various Subjects; from Miscellanies – 1711).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떻게 우리가 예수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요?

O'Day (John, New Interpreters Bible)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사랑의 궁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신자들로, 예수께서 공동체에 명령하는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give up)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give away)이라고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 전치사들의 구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구현하는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grace)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관계의 충만함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그의 생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말미암은 예수의 죽으심은 자기 부인의 행위가 아니라, 충만함의 행위, 즉, 그 생명이 결국 죽음에 이를 때에조차도 그의 삶과 정체성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행위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부인한다는 뜻도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다. 그의 정체성과 소명에 따라 온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보다는 예수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한계가 없는 것을 아는 사랑에 의해 철저하게 형성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자는 그 사랑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서로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공동체의 가능성들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수반하는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p. 734]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오늘 살아가는 이유가 ”새 계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 우리가 예수님이 가시는 그 곳에 오늘 가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 새 계명을 지킨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계신 그 곳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14:3-4)

이 주일,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인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1974년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복음주의 대회(빌리 그레이엄)

우리의 열렬한 사랑

이 선언은 사랑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은 언약의 언어이다. 성경이 말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잃어버린 인류와 오염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다시 사랑, 곧 그 자체로 언약의 주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과 열정적인 헌신을 보여 주는 우리의 사랑을 요청한다. 로잔언약은 복음화를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의 열렬한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잔 언약을 재차 확증한다.

 1. 죄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괴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세계의 모든 차원에 미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으로서의 온전한 복음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2.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전 역사의 모든 세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고,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선교를 공유하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 교회를 위해 우리의 사랑을.

3.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나 그분이 마음으로 품으신 세상, 곧 사랑하셨기에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주신 온 세상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이와 같은 삼중적인 사랑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복종하며, 복음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모든 열방을 제자 삼기 위해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한다.

I.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신앙고백

1.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3.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사랑한다 

4. 우리는 성자 하나님을 사랑한다 

5.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한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사랑한다 

II. 우리가 섬기는 세상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행동 요청 

IIA. 다원적이고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기 

IIB. 분열되고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IIC. 타종교인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기 

IID. 세계복음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기 

IIE. 겸손하고 온전하며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도록 교회 부르기 

IIF. 선교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의 지체 안에서 동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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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