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50번 시편116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회중)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인도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회중)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인도자)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회중)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렸을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인도자)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회중)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1-8)
(인도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회중)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인도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회중)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12-15)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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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14장 1~1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14장은 13장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날, 그 날 저녁의 이야기로 시작된 13장은 17장까지 이어집니다.

이 후 18장은 예수님께서 유다와 군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아랫사람들에게 잡히시는 장면을 시작으로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 19장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20장은 부활하신 예수님, 21장은 다시 제자들을 만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마지막 부탁하시는 장면으로 요한복음은 끝을 맺습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은 이 13장에서 17장까지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기록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알고 계신 그 날, 그 때가 왔음을 알고 계신 그 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 날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시며 시작된 말씀은 17장까지 엄청난 분량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말씀이 그 날, 하루의 이야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먼저 13장에서 이어지는 14장의 말씀에 눈에 띄지 않지만 다른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유다는 빵 조각을 받고 나서 곧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밤이었다.”(요 13: 30)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녁부터 밤까지 모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께 젖은 빵을 받은 유다는 밖으로 나가고 이제 예수님의 곁에는 11명의 제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밖으로 나간 것을 신경쓰는 제자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밤입니다.

유다가 떠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베드로가 잘 이해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잠시 동안만 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에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지금 너희에게도 말하는데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요13:33)

그러자 베드로가 바로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지만 이후에는 따라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주님, 왜 지금은 왜 내가 주님을 따라 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버리겠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묻고 대답을 합니다.
“네가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따라가고,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는 그 마음이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진심은 꼭 한번은 시험을 통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때의 그 마음이 진심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진심은 꼭 한번은 시험을 통과해야 진심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심’은 ‘공허’해 질 수 없기에 꼭 ‘진심’은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진심은 18장에서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러하지 않을까요? 내가 겪는 시험은 아마도 나의 ‘진심’에 관한 아주 당연한 시험인 것이지요. 진심을 이야기 한다면 ‘시험’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 ‘시험’을 통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제 14장 말씀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5절부터 7절까지는 예수님과 도마의 대화입니다. 8절부터 11절까지는 빌립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12절부터 21절까지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2절은 유다(가룟유다가 아닌)가 예수님께 묻고 23절부터 31절까지 예수님의 대답이 이어지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말씀하시니 11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마가의 집)을 떠나며 14장이 마무리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14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밤 깊은 그 날, 예수님은 당신의 주변에 둘러앉은 제자들의 얼굴을 돌아보셨겠지요. 그리고는 그들의 얼굴에 잠겨있는 많은 염려와 걱정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떠나온 가족,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예루살렘에 흐르고 있는 위험한 분위기와 힘도 능력도 없는 자신들... 제자들은 근심을 숨길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제자들의 걱정과 염려와 근심을 알고계신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오늘의 근심도 그리고 내일, 일어날 근심도 아버지를 믿으니 나를 믿고 근심하지 말아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하지만 않아도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근심’에서 비롯된 일인 것 같습니다. 재해와 재난, 사건과 사고로 인해 겪는 고통이 배가되는 것도 거기서 시작된 ‘근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근심’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를 믿으니 나를 믿으라."

오늘 하루,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시는 그 ‘길’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가는 길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그 길,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으로 간다. 그 곳에서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이 함께 거하기에 내 아버지의 집은 충분하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안다.” (요14:2~4)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의 이유가 바로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우리가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 때, 도마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우리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요14:5)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박물관에 ‘호모사피엔스, 진화’에 관한 전시를 보러갔었습니다. 너무도 새로운 내용들로 기획된 전시는 찰스 다윈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들을 믿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잘 알고 있으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전체가 아닌 부분일 뿐이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내용들은 늘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어야 알게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보게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7)

그러자, 빌립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세와 이사야, 그들이 하나님을 보았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본 자들을 통해 믿음을 이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우리가 만족하겠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본다면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어라.”(요14:9~11)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면 먼저, 믿음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버지를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보고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다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아들, 그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도마와 빌립같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하는 내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한 그 일들 때문에 믿어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생명을 얻을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오늘도 ‘믿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그 믿음이 우리 안에 이미 살아있음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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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