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96번 어린이주일
(인도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회중)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인도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회중)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127:3-5상)
(인도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아니하면
(회중)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인도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회중)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인도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회중)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18:3-5)
(인도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회중)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다같이)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34장 나 어느날 꿈 속을 헤매며
말씀 _ 요한복음 14장 1~1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다음은 Gail O'Day (John, New Interpreter's Bible)의 요한복음 13~17장의 개요입니다.
고별 식사와 담화(13:1-17:26)
- 고별 식사(13:1-38)
- 고별 담화(14:1-16:33)
- 예수의 고별 기도 (17:1-26)
예수님의 고별담화, 즉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시는 마지막 말씀이 이어집니다. 함께한 제자들이 얼마나 예수님과의 이별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도마와 예수님의 대화도 그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 말씀입니다.
도마가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도마는 예수님께 길을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고별담화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은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달리 보면, 그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사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런데 이 명령이 얼마나 어려운지 신학자 Gail O'Day는 예수님조차도 달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11:33, 12:27, 13:21에서 동일한 단어가 예수님에게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한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속 깊이 비통함을 느끼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지금 내 영혼이 고통스럽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심령이 몹시 괴로워하시며 이렇게 증언하셨다.”
예수님께서도 때때로 “마음”이나 “심령”이 근심할 때(괴로울 때)가 있었다면, 우리가 근심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시는 위의 세 가지 경우가 모두 죽음의 권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게 됩니다. 오늘이 부활절 제5주가 됩니다. “부활”의 소식이 “죽음”의 괴로움과 근심을 무력하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을 Malina &Rohrbaugh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는 이렇게 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을”(into) 믿는다는 것은 요한 특유의 관용적 표현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구문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신뢰를 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의 관계들의 집단적 특성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박혀 있다. 거기에는 아주 깊은 단결과 충성이 뒤따른다. 집단적인 문화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박혀 있는(속해 있는) 단체의 결과이기에 늘 집단과 관련이 있다. 요한 특유의 관용법(사용된 헬라어 시제가 진행 중이거나 계속되는 행위를 암시한다)은 예수의 오랜 동안의 결속(연대)을 정확하게 암시한다. [p. 130]
여전히 우리 안에, 주변에 괴롭고 근심스러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괴로움과 근심의 일들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괴로움은 실제적이고 너무도 절박한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가 뿌리를 내려야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 몹시도 괴로울 때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신가요? 10년 전 오늘, 저는 오늘의 저의 모습을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의 제 모습 또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면에서 이미 알고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해 한 장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도마는 예수님께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묻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돌이켜 걸어가는 예루살렘이요. 시온입니다.
“어디”가 아버지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면,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입니다.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다 실행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