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51번 시편 118편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회중)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인도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회중)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게서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회중)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1-10)
(인도자)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3-14)
송영 _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14장 12~3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주 말씀에 이어 요한복음 14장, 예수님과 11명의 제자들이 함께하는 목요일 밤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2)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12절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말씀은 31절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이에 유다가 갑자기 예수님께 묻습니다.
22절입니다.
“주님, 우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시면서도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려고 하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 요한복음은 유다를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3장에서 가룟유다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고 14장에 등장하는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 뿐입니다. 이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다대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에 관해서는 이외에 알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그를 예수님의 제자, 유다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책입니다. 그런데 이 66권의 책이 성경으로 정리되기 위해서 수백년의 시간이 필요하였습니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의 성경은 대부분 사람의 이름이지요. 특별히 신약성서는 사도행전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이름과 도시의 이름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27권의 신약이 인정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사도(Apostle), 예수님의 제자인가?입니다.
우리는 유다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라는 기록이 ‘유다’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유다가 누구인지?에 관한 가장 분명한 대답은 그가 ‘제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대답이 전부이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에 관해 그 무엇도 더 설명할 것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저 우리가 ‘제자’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이 전부이길 기도합니다.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향한 유다의 말은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왜”라고 묻고 있지만 사실은 세상에 나타내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제 세상에 나타내보이시라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 나타내보이시라! 이 말을 쉽게 정리하면 이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 밤에 우리에게만 그 말씀을 하지 마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스라엘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예수님을 나타내 보일 것이라고 하시지만 왜 우리에게만 보이려고 하시고 세상에는 보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세상에도 주님을 보여 주십시오.’
이런 유다의 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3절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대답은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왜 세상에 보이려고 하지 않으시는지 묻는 유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이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하십니다. 질문에 대한 전혀 다른 대답처럼 생각되지만 이어지는 31절까지 말씀을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31절 말씀입니다.
“세상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나를 나타내는 것이다.”
"세상은 알아야 한다. 내가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왔단다."
유다의 관심은 우리가 그렇듯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사람’에 있습니다.
세상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그 속내를 잘 살펴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권세, 세상의 권력, 세상의 힘, 세상의 성공, 세상의 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인지?
세상의 아픔, 세상의 고통, 세상의 가난, 세상의 전쟁, 그래서 세상의 평화에 관심이 있다는 것인지? 정말 그 속내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다.(요14:27)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절부터 31절까지 말씀 번역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너희”가 무려 30번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세상은 “너희” 곧 “우리”입니다.
지난주에 읽은 한권의 책<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한다>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발달된 두 종족이 서로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세상과 미래를 바꾸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과거의 사건을 보이지 않게 변화시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절대 과거의 시점에서 보면 결코 눈에 띄지 않는 변화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변화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달려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한 노예가 살고 죽음으로 미래는 엄청난 변화에 이릅니다. 한 아이가 하루 일찍 태어난 것만으로도 미래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마주합니다.
세상은 ‘우리’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나’로 부터입니다. ‘나’로 인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세상은 ‘너희’인 것입니다. 그 분은 태초부터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께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왜내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16절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께 구할 것이며...”
21절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며...”
23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24절 말씀입니다.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6절 말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성령께서...”
28절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는 나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
31절 말씀입니다. “세상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이 아니라 ‘사람’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사람’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임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아버지'께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들을 그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일들도 할 것이다." (요14:12)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다 실행할 것이다." (요14:14)
찬양 _ 찬송가 430장 주와같이 길 가는 것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