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66번 시편150편
(인도자)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회중)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인도자)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회중)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인도자)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회중)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인도자)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회중)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인도자)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회중)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다같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1-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말씀 _ 요한복음 14장 23~3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14:1-16:33은 예수님의 고별 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특별한 점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사건과 같은 다가올 사건들을 준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소모빌(James G. Somerville)은 <The Christian Century, p. 471>에 기고한 “누가 우리들을 돌볼 것인가?”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 강론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이까?”(13:36)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3]
“우리가 함께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13:33]
“얼마나 오래 동안 가서 계실 것입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14:19]
“누가 우리를 돌볼 것입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다.” [14:16]
오늘의 주제가 바로, 남은 우리를 누가 돌볼것인가?입니다.
23절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22절에서 가룟인 아닌 유다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emphanizo), 세상에는 아니하려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요.
그런데 이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방금 전에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는 자, 곧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할 것이고, 그들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21절)
여기서 다음과 같은 대조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우리 대(對) 세상
∙예수가 그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들 대(對) 세상
∙계명을 지키고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 대(對)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유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1)말씀(logos)
2)보혜사(파라클레테 Paraclete)입니다.
1.예수(와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오신다.
조건문: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logos)을 지키리니”
“지킨다””(tereo)는 헬라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지켜보다, 경계하다/조심하다
2. 간직하고, 유지하다, 보존하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보호하다
3. 잃어버리지 않게 지키다
4. 지키다=보호하다
5. 지키다, 준수하다, 성취하다, 유의하다
우리는 흔히 순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순종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키는 것은 단순한 순종의 범위를 넘어서서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또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말하고 행하신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14-15장에서 “사랑하다”가 “지키다” 앞에 두 번 나오고(14:15,23), “지키다”가 “사랑하다” 앞에 두 번 나오지요.(14:21;15:10).
그리고 “지키는”(keeping)이란 표현은 “계명들”(entole)과 함께 사용되고(14:15,21;15:10), “말”(logos)과 함께 사용됩니다.(14:23,23;15:20).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말씀과 계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대로 내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순종하는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그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목적은 증언에 있습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을 지키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일(즉 결과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다.
2. 아버지와 아들이 그에게 가실 것이다.
3. 아버지와 아들이 그와 함께 있을 거처를 만들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받는 약속은, 그(와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즉,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말씀이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누가 남은 우리를 돌보실 것인가?라고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가 그의 말씀을 지킬때에 그가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보혜사에 대한 약속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테입니다. 파라클레테(paraclete)는 너무 많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번역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동사 parakaleo의 문자적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 사람을 자기 옆으로 호출하다”는 뜻입니다. 명사는 “법정에서 돕는 사람”이란 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돕는 사람”이란 일반적인 번역뿐만 아니라, “상담자,” “변호사/옹호자”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는 사람/대변자”와 같은 번역들이 있습니다.
성령과 다르게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 5회 나옵니다. 요한1서 2장 1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요한복음의 고별강론에서 4회가 나옵니다. (14:16,26;15:26;16:7).
오늘 본문에서 파라클레테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보혜사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6:8)
보혜사가 이 땅에 남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길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흔히 열심있는 교인의 이미지?
나니아 연대기로 사랑받는 작가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분별력’(Prudence)이란 실생활에 적용되는 양식을 뜻하는 말로서,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분별력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착하기만’ 하면 어리석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분별력 있는 사람입니다.
3.평화/평강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버지와 아들의 말씀, 보혜사 성령이 결국 우리에게 전하시는 것은
“평화”(eirene)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평온이라는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사귀는 방식이란 의미가 더 크게 담겨 있습니다. 즉, 평화란 공동체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여유를 평화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 그것은 교회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그를 통해 평화가 우리 안에 깃들게 하기 위함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서 적용할 수가 있는 “평화”의 또 하나의 용법은, 평화가 하나님의 통치의 표지라는 점입니다.
말씀(logos)을 통해, 그리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파라클레테Paraclete)를 통해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우리교회를 통해 가정과 세상에 평화가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