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36번 시편90편

(인도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회중)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인도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회중)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인도자)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회중)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인도자)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회중)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인도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회중)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도자) 누가 주의 능력을 아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회중)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12)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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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말씀 _ 요한복음 14장 23~27절, 누가 우리를 돌볼 것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14:1-16:33은 예수님의 고별 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특별한 점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사건과 같은 다가올 사건들을 준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소모빌(James G. Somerville)은 <The Christian Century, p. 471>에 기고한 “누가 우리들을 돌볼 것인가?”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 강론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이까?”(13:36)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3]
“우리가 함께 갈 수 있습니까?”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13:33]
“얼마나 오래 동안 가서 계실 것입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14:19]
“누가 우리를 돌볼 것입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다.” [14:16]

 

오늘의 주제가 바로, 남은 우리를 누가 돌볼 것인가?입니다.

1.예수(와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오신다.

조건문: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logos)을 지키리니”

“지킨다””(tereo)는 헬라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지켜보다, 경계하다/조심하다
2. 간직하고, 유지하다, 보존하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보호하다
3. 잃어버리지 않게 지키다

4. 지키다=보호하다
5. 준수하다, 성취하다, 유의하다

우리는 흔히 순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순종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키는 것은 단순한 순종의 범위를 넘어서서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말하고 행하신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14-15장에서 “사랑하다”가 “지키다” 앞에 두 번 나오고(14:15,23), “지키다”가 “사랑하다” 앞에 두 번 나오지요.(14:21;15:10).

게다가,“지키는”(keeping)이란 표현은 “계명들”(entole)과 함께 사용되고(14:15,21;15:10), “말”(logos)과 함께 사용됩니다.(14:23,23;15:20).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말씀과 계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내게 명령하신대로 내가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순종하는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그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목적은 증언에 있습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을 지키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일(즉 결과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를 사랑하실 것이다.

2. 아버지와 아들이 에게 가실 것이다.

3. 아버지와 아들이 와 함께 있을 거처를 만들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받는 약속은, 그(와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즉,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가 누가 남은 우리를 돌보실 것인가?라고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가 그의 말씀을 지킬 때에 그가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보혜사에 대한 약속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테입니다. 파라클레테(paraclete)는 너무 많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번역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동사 parakaleo의 문자적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 사람을 자기 옆으로 호출하다”는 뜻입니다. 명사는 “법정에서 돕는 사람”이란 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돕는 사람”이란 일반적인 번역 뿐만 아니라, “상담자,” “변호사/옹호자”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는 사람/대변자”와 같은 번역들이 있습니다.

성령(아지오 프뉴마 Άγιο Πνεύμα)과 다르게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 5회 나옵니다. 요한1서 2장 1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요한복음의 고별강론에서 4회가 나옵니다. (14:16,26;15:26;16:7).

오늘 본문에서 파라클레테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이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보혜사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6:8)

보혜사가 이 땅에 남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길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흔히 열심있는 교인의 이미지?

나니아 연대기로 사랑받는 작가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분별력’(Prudence)이란 실생활에 적용되는 양식을 뜻하는 말로서,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분별력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착하기만’ 하면 어리석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분별력 있는 사람입니다.

 

3.평화/평강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데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께서 그가 떠나시며 그가 오실 때와 같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우리에게 “평화”(eirene)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평온이라는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사귀는 방식이란 의미가 더 크게 담겨 있습니다. 즉, 평화란 공동체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여유를 평화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 그것은 교회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그를 통해 평화가 우리 안에 깃들게 하기 위함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에서 적용할 수가 있는 “평화”의 또 하나의 용법은, 평화가 하나님의 통치의 표지라는 점입니다.

말씀(logos)을 통해, 그리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파라클레테Paraclete)를 통해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예수는 성령을 통해 제자들과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14장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예수의 권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14:1).

그리고 예수는 지금 다시 이렇게 권면하고 계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만날 때에 평안의 인사를 전하실 것입니다.(요한복음20:19,21)

평화를 뜻하는 헬라어 에이레네(eirênê)는 전통적인 히브리 인사말인 샬롬(shalom)을 번역한 것으로 샬롬(shalom)은 갈등의 부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의 깊고 통전적인 측면으로 세상이 줄 수 없지만, 하나님에게서만 올 수 있는 평화를 말합니다.

이 평화의 선물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파송하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선물과 함께 불어넣어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누가 우리를 돌보실 것인가?였습니다.

우리를 돌보신 말씀, 성령, 평화를 마음에 새기시길 소망합니다. (다음 주는 오늘 말씀에 이어 하나님의 나라, 그의 통치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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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