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01번 나라사랑

(인도자)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회중)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인도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회중)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출15:1하-2상)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회중)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
(인도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회중)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인도자)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회중)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1-3)
(인도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회중)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다같이)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9:2-3상, 19:25하)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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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82장 어둔밤 마음에 잠겨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15장 1~27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은 1절부터 27절까지 한편의 설교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반복해서 읽기만 하여도 말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5장 말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15: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들이다.” (요15:5)

‘나는 누구인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400년 동안을 인류는 여전히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철학자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이 문장에 대한 해석으로 시름하였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수 천권, 아니 수 만권에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지금도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찾기가 어렵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으십니다. (시기적으로 소크라테는 예수님보다 400년 전에서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로 예루살렘에서 사용된 언어가 바로 헬라어라 불리우는 그리스어입니다. 로마는 그리스의 사상을 그대로 흡수하여 그리스-로마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소크라테스를 알고 계셨는지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지만 후대를 살아가는 시대의 특권으로 상상력을 더해 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라는 말은 비로서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는 말씀을 통해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결국, ‘관계’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농부’이신 내 아버지를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고백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나아가 ‘너희는 가지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이런 일들을 말한 것은’이라는 표현처럼 예수님이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자신을 말씀하신 이유는 ‘너희’가 누구인지 알게하고자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너희는 가지이다.’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서 잘려진 나뭇가지는 곧 말라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곳은 가지입니다. 가지에서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는 하나일 수 없으니 그래서 ‘너희는 가지들’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많을수록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물론 이 가지들, 곧 포도나무를 가꾸는 이가 ‘농부’입니다. 모든 것은 ‘농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농부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나’를 아는 오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 15장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편의 설교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한 편의 설교 안에서 중심되는 문장을 찾아본다면 두 개의 문장이 떠오르게 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너희는 내 안에 머물라.’

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머물러야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잘 자라 열매를 맺으려면 ‘내 안에’ 머물러야합니다.

성경의 말씀은 때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한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말씀처럼, 비유로 가득합니다. ‘포도나무’ ‘농부’ ‘가지’... 읽고 듣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의 아름다움은 말씀을 그저 읽고 듣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말씀을 상상하고 또 새롭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내 안에’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라는 말씀에서 ‘내’는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안에 머물라’라는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님 안에 머물수 있을까요?

“너희는 내 안에 머물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겠다.”(요 15:4)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내 안에’는 바로 바울 자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울,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사신다는 말씀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그래,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그런데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은 분명하게 순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예수님 안에, ‘내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포도나무와 가지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수 있지만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있을 순 없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포도나무는 가지와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지를 보고도 포도나무라 부르게 됩니다.

‘내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이해하고 고백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종종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말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있으면 결코 우리 뜻대로만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열매가 아닌 포도나무 열매입니다.

‘내 안에’ 머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켰고 또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요15:10)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내 계명이다.” (요15:12)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먼저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안에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으니 너희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지금까지의 말씀들을 다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내가 주어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내 안에’ 먼저 ‘예수님 안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세상을 미워하시고 우리를 증언해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내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내가 누구인지 고백하는 오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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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74장 가슴마다 파도친다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