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1번 시편 118편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회중)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인도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회중)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게서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회중)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1-10)
(인도자)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도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3-14)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말씀 _ 요한복음 15장 1~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15장 1절부터 17절까지 큰 단락 안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장 1~17절까지의 말씀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가 공동체의 삶을 위해 이 모델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교회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그럼 공동체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예수는 공동체는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들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15장 1-17절에서 등장하는 공동체의 이미지는 연관성, 상호성, 그리고 내재성입니다. 이제 포도나무를 떠올려 보십시오. 포도나무에서 가지들은 다른 가지와 거의 완전하게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가지가 어디에서 끝나고, 다른 가지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지들은 중앙의 포도나무에서 성장할 때 모두가 함께 성장합니다. 이 포도나무를 보면 공동체를 비로서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공동체가 포도나무 이미지와 같다면 공동체에는 독립된 개인들이 없고, 서로를 완전하게 에워싸고 있는 가지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 가지 이미지 중에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열매는 가지 각각에서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지 하나하나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 가지의 포도나무와의 관계에 좌우 됩니다. 완전하게 에워싸고 있다고 해서 하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는 포도송이이지요. 그런데 이 포도송이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지중해의 포도송이는 이 크기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만약 가지가 하나라면 포도송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지가 찟겨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 가지들은 서로가 서로를 에워싸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꼭 포도나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또는 나무뿌리와 가지의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의 잎사귀,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나무는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관계가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라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요한복음 15장의 내용입니다. 사실, 포도나무와 가지를 계속 상상하는 것은 오늘 말씀의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내가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예수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신가요?
요한복음 15장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거하다.”입니다. 거하다의 사전적의미는 사람이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다.입니다. “거”자는 한자로 살 ‘거’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우관선사께옵서는 죄인들과 거하심이 분명할 것이오.”
거하다의 헬라어는 meno(거하다)입니다. 메노는 “머물다, 남아 있다, 살다, 거주하다, 지속하다, 참다, 계속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 이 동사는 포도나무와 연결된 가지들을 가리키고, 어떤 때에는 예수와 연결되어 있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15장 1-17절에서 이 단어는 11회 사용되는데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을 가능성(2절)과, 그들이 예수 안에, 예수가 그들 안에 거하면서(4절 이하) 많은 열매를 맺는 것(5절) 사이를 대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예수님께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거하다”와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열매”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해야 하는 이유가 “열매”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열매 맺음”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에 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단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을까요? 불에 던져 사라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혼난다” “벌받는다”는 경고를 듣고 잘하길 바라는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늘 변합니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다 할지라도,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믿음은 늘 변화합니다. 우리 믿음의 “뿌리”는 결코 변하지 않지만, 매년 우리 믿음은 하나님의 전지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오래된 어떤 습관들이나 태도들이나 행동들의 전지가 필요한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때, 우리 삶에서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것이 가지치기를 필요로 할까요?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께서 새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여,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고,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고, 여러분을 죽이며 살게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내년에 지금과 전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가지치기를 통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찬양 _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