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6번 시편 10편
(인도자)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회중)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인도자)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회중) 의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인도자) 악인의 팔을 꺽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회중)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회중)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귀울여 들으시고
(인도자)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회중)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2-18)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말씀 _ 요한복음 18장 33~37절 "네가 왕이 아니냐?"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이시고 몇차례 걸쳐 심문당하시는 장면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제일 먼저 심문 받기 위해 끌려간 곳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집이었습니다. 본래 안나스가 유대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6년 수리아 총독 구레뇨에 의해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지만 16년경에 유대 총독 그라투스에 의해 해임되었습니다. 일찍 안나스가 해임되었지만 성경은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행4:6)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대제사장은 안나스였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의해 강제로 안나스가 폐위되고 가야바가 임명되었기에 유대인들은 여전히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안나스는 예수님을 간단히 심문 후(요18:19-24) 공식적으로 대제사장 자격이 있는 그의 사위 가야바에게 보내었습니다. 가야바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질문했고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마26:63-64) 이 대답을 구실 삼아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판결(산헤드린 공회 판결)만으로도 사람을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지만 십자가형에 처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3) 빌라도는 예수님을 첫 번째 심문 후 죄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방문 중인 헤롯에게 보냅니다.(눅 23:7)
4) 헤롯 안디바는 본래 갈릴리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는 유월절 기간이었기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골치 아픈 문제에서 손을 떼기 위해 헤롯에게 보내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 갈릴리를 통치하는 헤롯에게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롯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 소문 때문에 만나고 싶어 하고 있었습니다.(눅 23:7-8) 예수님은 헤롯의 질문에 전혀 대답하시 않으셨습니다.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더 이상 심문할 수 없어 희롱한 후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었습니다.(눅23:11)
5)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아마도 그는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군중들이 예수를 왕이라 부르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12:13,15)
그러자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께서 다시 빌라도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님 질문에서 “너”란 단어가 세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께서 빌라도를 심문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너는 나에 관해 무어라고 말하느냐?
빌라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누가 너희 왕이냐?”고 빌라도와 유대인들을 심문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왕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왕일까요? 왕이 아니라도 대통령이라면? 총리라면? 그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한 우리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떠한 왕을 상상하시나요?
지난 목요일 부천시여성회관에서 ESG와 여성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유엔의 지속가능한발전목표에 대하여 설명하며 “우리 공동의 미래, OUR COMMON FUTURE”라는 1987년 브루틀란 보고서를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 공동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것일까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우리의 범주를 매우 좁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 너, 우리, 우리집? 우리나라?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은 가이사가 그들의 왕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19:12,15).
그래서 가이사는 결코 진정한 왕이 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피하고 다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여러분,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빌라도의 질문과는 다른 의미의 질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묻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말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소망합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선 빌라도의 의도를 넘어선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 것이 아니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37절에서 빌라도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그럼 당신이 왕이로군!”.
“그럼 네가 왕이냐?”
이제, 예수님는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해 태어났으며 이를 위해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다”와 “이를 위해 세상에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여기 계시는 이유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이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현재시제)
O'Day (John, The New Interpreter's Bible)는 37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7c-d절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신학적인 주제들의 결정체이다.
첫째, 예수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예수의 증언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한다.(예를 들어, 3:31-36; 8:14-18, 42, 46; 14:6; 17:17)
둘째, “진리에 속한 모든 사람은 내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은 요한복음 10장의 목자강론의 주장들(3-4,16,27절)을 생각나게 한다.
다시 말해 “진리에 속하는” 것은 예수의 양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8장 31절에서, 진리를 아는 것과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동일한 의미로 묘사되었다. “진리에 속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충만함을 보는 것이고, 예수의 음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비교5:42;8:47;12:40-50).
예수는 선한 목자이고, 양들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분이시다(10:11, 17-18). 37절은 예수의 왕권을 종말론적인 심판자로서의 역할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며 진리의 말씀을 전하시는 그 자체가 세상을 위한 심판과 결단의 순간이다(5:22,27; 12:46-48). 예수는 여기에서 명목상 재판을 받고 있지만, 진리를 증언하시는 분이고, 세상은 그의 증언에 대한 반응에 따라 판단받는다(3:19;9:39).
다음 주일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다”라는 말씀으로 4주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오시는 예수님, 그러나 오직 진리에 속한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현재시제)
38절에서 빌라도는 다시 반문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의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그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해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함이라.”
“진리에 속하는” 것은 예수의 양이 되는 것, “진리에 속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예수 안에서 계시 된 하나님의 충만함을 보는 것이고, 예수의 음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찬양 _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