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65번 시편 145편
(인도자)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회중)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회중)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인도자)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회중)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회중)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회중)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1-10)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요한복음 19장 1~16절, 38~4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추석이 지나면 모두의 얼굴을 볼수 있을까? 기대하였지만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또다시 10월에나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라더니... 그리움이 깊어지네요. 하지만 이렇게 나태해지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익숙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 서로, 주일의 은혜를 기억하길, 교회를 더욱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며칠 전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도 그러려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거라곤 생각을 못한거지요.
“그렇게 똑똑한 임행심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살고, 임행심이 그렇게 사람같이 생각하지 않은 누구는 고생 안하고 세상 편하게, 먹고 놀며, 돈 쓸거 다 쓰고 사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제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라 대답을 못했습니다.
제가 고생을 하고 사나요? 아니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제가 고생을 하고 산다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고생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너무 혼자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은 고민이 되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저는 고생을 하며 산다고 말 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중학생 친구의 부모님과 진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꽤 똑똑하고 확실히 공부 머리가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진로를 결정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제게 물으셨습니다.
제 대답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이대로 편안하게 살려면 특별히 공부를 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또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보내실 수도 있으니 더 공부를 시키지 않으시는 것이 편안하게 사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건, 더 공부를 하려면 이기적이지 않아야 해요. 이타적인 마음, 더 많은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지금보다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거에요."
제 말을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긴 해요.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거군요?”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포부)을 가져라!”라는 말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도 기억에 남은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1877년, 일본의 북해도 삿뽀르 제국대학에서 당시 일본 청년들을 교육시키던 식물학교수인 미국인 윌리암 크라크(William Clark)박사가 한 말로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ambitious라는 뜻을 ‘야망’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하는 것과 ‘포부’라고 번역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야망은 권력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권력, 힘을 가져라!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윌리엄 크라크는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농과 대학장으로 1876년 9월 황무지였던 삿포로에 농림대학을 세우고 학생들에게 헌신적으로 학문과 성경을 가르치며, 철저한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후에 그가 다시 일본을 떠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전송하러 모여 있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에게 한 말이 "젊은이여, 꿈을 품어라!" (Boys, be ambisious)입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과 비젼을 깨달았던 젊은이들은 후일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우리나라에도 이 말이 전해진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 그에 따른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공부를 했다면, 똑똑하다면 편안하게 먹고 놀며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권력을 가지려 한다면, 힘을 가지려 한다면, 높아지려 한다면 오늘 본문 말씀의 빌라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내게 말하지 않겠소? 내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또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소?”(요19: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위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내게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 준 자에게는 더 큰 죄가 있다.”(요19:11)
그때부터 빌라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풀어준다면 당신은 가이사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에게 대적하는 것이오"하고 외쳤다.(요19:12)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다.(요19:16)

빌라도[Pilate]는 ‘창을 가진 자’란 뜻입니다. 본명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이고 유대 땅의 로마 제5대 총독(A.D. 26-36년경)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총독은 유대인들의 사형 집행권과 지방 법원(산헤드린 공회 등)의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대제사장의 임면권을 가지는 등 군사, 사법, 종교를 두루 관장하는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에 의해 제소된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심문하며 예수님의 무죄를 알게 되었고(요18:38), 따라서 예수님을 석방시키려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요19:12; 행3:13).
하지만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강압적인 요구 앞에 자신의 임기 중 민란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빌라도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과는 무관하다면서 무죄의 표시로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마27:24).
빌라도의 바람대로 그렇게 빌라도는 책임을 면하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사도신경을 통해 빌라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고백은 이천년 동안 내려오고 있으며 또다시 이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빌라도는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전하는 역사적인 서신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던 분입니다. 만일 모든 유대인들이 증거 하는 것처럼 그가 했다고 하는 많은 일들을 그가 할 수 있었다면 그를 대적하게 했던 그의 모든 주장은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는 범죄 함으로, 어떤 법을 어김으로써 또 누구를 그릇되게 함으로써 비난을 싼 적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 그를 지지하였던 사람 뿐 아니라 그를 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여,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안티파터」가 제게 관한 여러 가지 가혹한 평을 하였다고 들었으므로 황제께서 사건의 전모를 아신 후 제가 취한 행동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내려 주시도록 자세히 쓰느라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각하의 건승(健勝)을 빕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 빌라도 -
안쓰러운 빌라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의 무서움을 알지 못한 댓가를 가혹하게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 총독으로서 그는 결코 그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빌라도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 마지막 부분에는 빌라도 앞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리마대 요셉, 그는 아리마대 사람으로 다른 요셉과 구분하기 위하여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공회의원이며 부자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예수님의 재판에서 예수님을 변호하지 못하였지만 십자가에 달려 장사조차 지내지 못하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자 빌라도의 앞에 선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그 사실을 숨겨오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는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었다.(요19:38)
또한 언젠가 밤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었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약 33킬로그램 정도 가져왔다. (요19:39)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세마포로 감쌌다.(요19:40)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였던 인물입니다.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요3:16)
니고데모 또한 산헤드린 공회의원이었으며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 몰약과 침향을 무려 33킬로그램이나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과 능력은 분명, 그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 그에 따른 책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복’이 아니라 ‘형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과,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Boys, be Ambitious!”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바라기는 안쓰러운 빌라도가 되지 않기를,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은 지도자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 내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나와 함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알았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으며 또 앞으로도 알려 줄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멘.
찬양 _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매 맘에 들어와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