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9장 성도여 다 함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17번 구주강림3
(인도자)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회중)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인도자)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회중)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인도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회중)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인도자)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회중)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인도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회중)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인도자)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회중)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다같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사35:1-8상)**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11장 귀중한 보배합을
말씀 _ 요한복음 1장 6-8, 19-2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요한복음은 “표적”, 즉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사물들과 사람들에 대한 책입니다. 표적은 보는 사람과, 그 사람이 보고 있는 것 사이에 위치하고 두 개의 사물이나 두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표적은 중재자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중재자들은 바른 믿음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도, 로고스로서 일종의 중재자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계시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요한복음의 주제이자 목적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그래서 요한복음 자체가 우리에게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적”이며 중재자입니다.
서언
요한복음의 서언(1:1-18)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a. 말씀과 창조 및 창조자와의 관계(1:1-5)
b. 말씀과 세례요한과의 관계(1:6-9)
c. 말씀과 세상과의 관계(1:10-18)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의 관심사는 예수와 요한, 그리고 요한과 유대인 사이의 관계에 있습니다.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음
오늘의 복음에서 요한은 증인(martyria/martyreo)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7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그가 증인으로 온 것은, 빛에 관해 증언해서 모든 사람으로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옴과 그의 증언의 목적은 빛을 가리켜주어, 다른 사람들로 믿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요한은 “표적,” 즉 중재자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증인으로 보냄을 받았다면 다른 일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럼 여기서 다시 말씀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증인과 질문자, 즉, 우리는 질문자가 되거나 증인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당신은 주 하나님을 사랑합니까?”라고 묻는 질문자,
또는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는 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또는 “주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당신을 사랑하시고, 온 세상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는 증인입니다.
증인으로서의 요한에 관해서 Maloney (John)는 이것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c-5절에서 보게 되는, 역사의 사건들에 말씀(Word)이 관여했다는 암시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한”이란 고유한 이름을 지닌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 계속된다. 요한은 단지 어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6절). 요한복음에서, 예수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한 주장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일부였다. 그가 빛을 증언하기 위해 온 것은, 다른 사람들로 생명을 주는 빛의 임재를 통해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p. 37]
만일 요한이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일부가 된다면, 그 때 예수께서 우리에게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apostello)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하실 때 우리를 그 동일한 계획의 일부가 되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구원계획의 일부라는 암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 예수를 가리키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중재자이자 표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증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또 한 부류의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 그들도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유대인들/바리새인들입니다.(1:19,24)
저와 여러분은 증인입니까? 질문하는 자입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셨음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오직 증인의 삶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이요. 중재자임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질문하는 자들에게 요한은 대답합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누가 아닌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해, 자신의 사명에 관해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례요한에 관한 말씀은 과장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세례자 요한 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나온적이 없다.”(마11:11)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가 아니고,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사명에 관해 명확하게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어떤 루터교 목사님은 나는 “우리는 침례교도가 아니다, 우리는 감리교도가 아니다. 우리는 로마 가톨릭교도가 아니다. 우리는 루터교도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런 책을 썼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런데 나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요한의 대답은 그 자신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잘 들어보면 모두 “예수” 그 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예수님은 빛입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왔고 모든 사람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자입니다. 그는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를 통해 창조되었지만 세상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부터 오신 독생자의 영광이었으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의 충만함으로부터 우리는 모두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와 같이 고백하십니까? 이와 같이 고백하신다면 그 고백에서 우리는 우리를,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요한의 고백에서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발견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