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97번 청년주일
(인도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회중)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인도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회중)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인도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회중)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인도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회중)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인도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회중)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19:9)
(인도자)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회중)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인도자)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회중)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110:3)
송영 _ 찬송가 3장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없어
말씀 _ 요한복음 13장 31~3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본문은 짧지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31-32절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
2. 33절 예수의 떠나심
3. 34-35절 새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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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31-32절)
“영화롭게 하다/영광을 돌리다”(doxazo)는 동사는 5번 등장하고 영광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드러내줍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아들은 인자이지요.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영광**
영광이라는 단어는 예수님과 함께 사용될 때 부정과 긍정이 특정한 시기(때)를 통해 나뉘어 진다는 것을 요한복음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는(적어도 그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는)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다음의 말씀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7:39).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그이시라”(8:54-현재시제)
“그(진리의 성령)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4-미래시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7:1-부정과거시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서 지금도 내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17:5-부정과거시제)
요한복음 17장의 두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특정한 시기(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12:16).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
이 “때”는 바로 뒤의 12장 24절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11장 4절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즉, 그 사건을 통해)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결국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은 무엇인가요? 화려한 삶? 명예로움? 성공?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그 때를 깨닫고 기억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2. 예수의 떠나심(33절)
"작은 자들아/어린 자녀들아" (teknion)는 요한만의 표현입니다. 이 단어의 다른 7회의 언급들은 모두 요한1서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에 관해 전에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4절과 8장 21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다.
나는 떠나간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곳은 어디일까요?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디에서부터 오셨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12:26).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14:3-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14장, 17장과 달리 오늘 본문 말씀은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뒤이은 ”새계명“과 함께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지금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새 계명을 성취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새 계명(34-35절)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종교를 갖고 있지만,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from Thoughts on Various Subjects; from Miscellanies -- 1711).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떻게 우리가 예수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요?
O'Day (John, New Interpreters Bible)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사랑의 궁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신자들로, 예수께서 공동체에 명령하는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give up)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give away)이라고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 전치사들의 구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구현하는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grace)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관계의 충만함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그의 생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말미암은 예수의 죽으심은 자기 부인의 행위가 아니라, 충만함의 행위, 즉, 그 생명이 결국 죽음에 이를 때에조차도 그의 삶과 정체성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행위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부인한다는 뜻도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다. 그의 정체성과 소명에 따라 온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보다는 예수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한계가 없는 것을 아는 사랑에 의해 철저하게 형성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자는 그 사랑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서로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공동체의 가능성들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수반하는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p. 734]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오늘 살아가는 이유가 새계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이 우리가 예수님이 가시는 그 곳에 오늘 가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 새계명을 지킨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계신 그 곳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14:3-4)
이 주일 아침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인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주기도문(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